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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년 전통의 ‘미슐랭 가이드’…별 셋서 둘로 강등 불안감 탓, 프랑스의 스타 셰프 자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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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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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새로운 세기와 더불어 탄생했고 이 세기와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초판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가 갈수록 완성에 접근해 갈 것이다.…”

-1900년 ‘미슐랭 가이드’ 초판본 머리말 중에서

2003년 2월 24일 프랑스 외식 업계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슐랭 별 셋에 빛나는 천재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레스토랑 ‘코트 도르’ 경영과 관련해 여러 문제가 있긴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둘로 강등될 거라는 소문 때문이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루아조는 그해 또 다른 가이드북인 ‘고-미요’ 평가에서 강등(19점→17점)되는 등 부담을 안고 있었다.

비극적인 이 사건은 되레 미슐랭 가이드의 영향력을 재확인시켰다. ‘미식가들의 성서’로 일컬어지는 미슐랭 가이드는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별 셋으로 승격되는 순간 끊임없이 예약전화가 울려대고 매출이 2~3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가 대원칙이기에 강등할 때도 가차없다. 미슐랭 별 개수에 셰프의 자존심과 명성이 좌우되는 것은 물론 해당 상권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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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미국에선 미쉐린)사가 자동차 운전자들을 위해 발간한 여행안내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빨간색 포켓판의 안내서는 처음부터 레스토랑 정보를 독립해 표시하진 않았다.

주로 타이어 정보, 도로법규, 자동차정비 요령, 주유소 위치 등을 담았고 식당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호텔’을 표시할 때 언급됐다.

그러나 품질 좋은 정보로 호평을 받자 1923년판부터 추천 호텔과 레스토랑을 따로 다루기 시작했다. 오늘날과 같은 별 셋 시스템으로 정착한 것은 1933년에 이르러서다.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집
별 둘(★★)은 여행길에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길을 돌아갈 만한 집이다.
최고 영예인 별 셋(★★★)은 오로지 그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집으로 소개된다.

대체로 별 하나와 둘은 가격과 서비스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집인 반면 별 셋은 모든 게 완벽한 집으로 통한다.

별 셋에서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그렇기에 대부분 상당한 고가다).

미슐랭 가이드는 72년 브뤼셀의 ‘빌라 로렌’에 해외 레스토랑으로는 최초로 별 셋을 부여했다. 이후 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각국의 미식지도가 새롭게 그려졌다.

그러나 이들 유럽 각국 편은 나라에 관계없이 대체로 프랑스요리의 가치관과 유사한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을 별 셋으로 선택했다. 사실상 프랑스요리를 세계 미식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반면 ‘루아조 자살사건’이 있은 뒤 2004년 가이드북의 새로운 총책임자로 등장한 장뤼크 나레는 가이드북의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신예 요리사들을 적극 등용하는 한편 글로벌화하는 세계를 감지해 미국·아시아 진출 전략을 내세웠다.

2007년 미슐랭 도쿄 편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후 프랑스요리 전문점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별 셋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발간된 2016년판 도쿄 편에선 3스타 식당 13곳 가운데 2개의 프랑스식당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일본요리 및 초밥·복어 전문점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는 “미슐랭의 현지화 전략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음식을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이라며 “서울 편이 나온다면 모던 한식뿐 아니라 우래옥 같은 평양냉면집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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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미슐랭 심사원들 손님으로 가장해 암행 평가
둘이 다닌다. 오후 7시30분에 예약한다. 코스 요리와 단품을 주문하고 와인 반 병과 생수 두 잔을 곁들인다. 그리고 포크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직원의 대응을 살핀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더 셰프(Burnt)’에서 소개된 미슐랭 암행 심사단의 행동 양태다. 영화는 미슐랭 2스타 출신의 괴팍한 셰프 아담 존스(브래들리 쿠퍼)가 최고 영예인 3스타를 따기 위해 돌진하는 과정을 그렸다. 주방 안의 질투·배신·열정·좌절 등을 실감나게 담았다.

하지만 실제로 미슐랭 심사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별로 없다.

심사원들은 평범한 손님으로서 식사 한 뒤 비용을 확실히 지불하고 추후 취재할 때 이름을 밝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들은 미리 훈련을 받고 레스토랑에서 체크해야 할 항목과 평가 척도가 되는 미슐랭 기준을 익힌다.

각 지역을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심사원이 조사하며 그 결과에 독자가 보내온 앙케트 결과도 가미한다. 평가는 합의제다. 특히 별 셋 후보에 오른 레스토랑에는 여러 차례 방문해 언제나 일정 수준의 요리와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확인한다. 심사원에 프랑스인 외에 스페인·미국·아시아계도 포함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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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강혜란·송정·김선미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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