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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 5월에 서울 왔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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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의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억원 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金榮浣.50)씨를 지난 5월 집 부근에서 측근이 목격했음이 30일 확인됐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미국 여권을 이용해 최근까지 국내에 드나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金씨는 지난 3월 대북 송금 특검법 통과 직후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金씨의 전직 운전기사인 K씨는 30일 본지 취재진과 만나 "5월 중순의 오전 8시쯤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金씨 집 뒷산 등산로 입구에서 金씨를 만났다"고 밝혔다. 당시 金씨는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산을 막 내려오던 참이었다.

현재 K씨는 역시 평창동에 사는 기업인 P씨의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K씨는 "P씨가 기르는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다 金씨를 먼저 발견하고 '안녕하십니까, 회장님'하고 인사를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자 金씨는 언짢은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어디서 일 해"라며 잠시 K씨의 근황을 물었으며, K씨가 데리고 있던 개를 가리키며 "잡종개"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곧이어 金씨는 길 옆에 대기 중인 벤츠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당시 벤츠는 金씨 전속인 소위 '1호차 운전기사'가 몰고 있었다고 K씨는 전했다.

K씨는 "金회장(김영완씨)은 평소 건강을 무척 생각해 비 오는 날에도 아침이면 집 뒤 야산을 오르내린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金씨가 장기 출국에 대비해 대북 송금과 관련된 부분을 은폐 또는 마무리하거나, 자신의 가족.재산.사업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입국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金씨의 부인 張모(46)씨는 그가 목격된 지 한달 뒤인 지난달 18일, 대학생인 딸은 22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초등생인 아들은 이보다 앞서 출국했다.

떼강도 부른 괴박스=한편 남북 정상회담 전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뒤에서 평창동 金씨 집으로 운반된 대형 박스(본지 6월 30일자 8면)들은 현대상선이 현대택배를 이용해 실어나른 괴박스 96개였을 가능성이 짙어졌다.

현대택배 직원이었던 C씨는 당시 "2000년 4~6월 박스 1백개 정도를 현대상선 고위층 지시로 운반했다"며 "나도 무교동 본사에서 박스 38개를 싣고 갤러리아 백화점 뒤편에서 이름 모를 사람이 몰고온 6인승 밴에 옮겨 실었고, 이들은 어디론가 떠났다"고 말했었다.

문제는 이 박스의 용도와 내용물이다. 박스를 날랐던 사람들은 "소리나 무게로 보아 종이(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떼강도 사건도 당시 박스를 나른 운전기사들의 입에서 金씨의 거액 보관 소문이 퍼지면서 단초가 된 것이다.

박스가 테이프로 겹겹이 감겨 있었다는 것도 현금이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만일 현찰이었다면 박스의 크기(라면상자 두배)를 감안할 때 3억~4억원가량이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돼 1백50억~2백억원 정도가 된다.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이 중국은행 계좌를 통해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현대가 박지원(朴智元)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는 CD 1백50억원어치를 바꾼 현금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난 2월 이 부분을 증언했던 당시 현대택배 관계자들은 30일 일제히 "나는 모른다"며 함구해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결국 새로운 특검이나 검찰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으로 남게 됐다.

윤창희.이철재.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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