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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민선자치 1년] 공무원·시민단체 '입김' 견제받는 단체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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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남 마산의 시민단체인 '열린사회 희망연대'는 지난 5월 29일 '조두남 기념관 '개관식장에 참석한 황철곤 마산시장에게 밀가루 세례를 안겼다. 이 단체 회원들은 "조두남의 친일 행적을 조사해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항의의 표시를 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충북도는 이달 중순 인사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사무관 일부를 시.군으로 발령낼 방침이나 시.군 공무원노조가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로 민선 지방자치 3기가 시작된 지 만 1년이 됐다. 자치단체장들은 지난 1년간 세태가 크게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시민단체와 공무원 노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민선 2기 때보다 자치단체장들의 재량권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충북대 강형기 교수(행정학과)는 "일부 단체가 무리하거나 일방적인 주장을 펴는 경우가 있지만 지방정부 견제라는 순기능도 있는 만큼 상호 존중과 타협을 하면서 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목소리 커진 시민단체와 공무원노조=충북 진천군 공무원 노조는 지난 5월 도의 종합감사를 거부한 끝에 감사기간 단축과 대상 축소를 이끌어 냈다. 전북도는 지난 5월 시.군 감사에 나섰으나 남원시 등 일부 기초단체 노조가 반발해 '반쪽 감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군 업무에 간섭하는 자체가 지방분권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지난 4월 구청 순방에 나섰다가 동구청 노조원들로부터 소금 세례를 당했다. 결국 다른 구청 순시는 취소했다. 구청 공무원 노조가 "광역과 기초단체는 상하가 아닌 대등한 자격인데, 시장이 구청의 업무보고를 받겠다는 것은 자치권 침해 행위"라며 업무보고를 반대한 것이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시.군 업무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도와 시.군은 행정협의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계가 서먹해졌다.

충북도는 4년째 답보상태인 밀레니엄타운 개발사업 공청회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민자유치를 위한 사업인데도 대중골프장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지난 4월 경륜장 건설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지난달 10일 중구 안영동에 5만7천여평의 부지까지 확보했다. 재정수입 확대를 통한 시민복지 향상 등을 목표로 한 시 차원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전참여연대.대전YMCA 등 50여 지역 시민단체들이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등의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사업이 표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전시의 한 간부 공무원은 "의회는 물론 시민대표까지 나서 범 시민적으로 결정한 사업에 대해 시민단체가 이럴 수 있느냐"고 흥분했다.

광주시 북구는 지난해 11월의 공무원 연가투쟁과 관련, 지난 1월 핵심 가담자를 징계했으나 노조원들이 삭발농성을 벌이며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바람에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동반자 인식 공유해야=전문가들은 시민단체의 행정참여가 시대적 대세지만 여기에는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행정개혁시민연합 박동서(서울대 명예교수)고문은 "정책결정이나 예산편성에 전문가 그룹이 이끄는 시민단체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며 "그러나 단체장의 리더십을 허물어서는 곤란하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전남대 정근식(사회학과)교수는 "지방정부는 시민단체.공무원 노조가 자치시대를 열어가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하지만 시민단체들도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워 일방적 주장만 하지 말고 시민 의견을 정확히 수렴하는 역량과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기 교수는 "공무원 노조나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지방정부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따라서 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은 시민참여를 낭비요소로 여기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광주=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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