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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위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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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호 22면

커피 열풍이 드세다. 거리에 새로 들어선 가게들의 반은 커피 집이기 십상이다. 늘어난 업소만큼 충성 고객도 늘어 호황을 누리는 곳도 많다. 하루의 출발부터 일을 마칠 때까지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폐인들 덕분이다. 입맛과 취향의 단계도 높아만 간다. 커피 만드는 쪽과 마시는 쪽이 서로 간 보기를 하는 풍경도 눈에 띈다. 제대로 된 커피 집이라면 불쑥 “커피 주세요”라는 주문만으론 하수 취급을 받는다. 취향의 선호가 분명할수록 대접의 강도도 달라진다.


“산미 풍부한 이디오피아 커피 있어요?” 아니면 이가체프, 시다모, 하라, 코체.... 판독 불능의 암호 같은 산지를 줄줄 꿰야 커피 좀 안다는 사람 취급받는다. 커피 맛의 차이를 확실하게 감별하고 선호의 이유를 댈 수 있다면 바리스타와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커피를 화제로 나누는 양쪽의 대화는 급기야 온갖 전문 용어와 비유가 등장하는 말의 성찬으로 번진다. 로스팅 정도와 드립의 노하우를 따지는 것은 예사다. 그 차이의 상태에 ‘까암~짝’ 놀랐다는 커피 매니어들의 호들갑은 자못 진지하다. 미각의 단계를 공감하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 덕분에 커피는 풍성해졌다.


20여 년 전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는 내게 보내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커피 하나 가지고 유난을 떤다는 이유였다. 대충 마시면 될 음료까지 가리고 따지는 행동은 곧 할 일 없는 사람의 한심함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름 본격 커피 애호가였던 나는 커피 전문 잡지의 표지 모델로도 나왔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전문성은 빛을 잃었다. 예전에 없던 다양한 원두가 수입되어 모르는 것이 더 많아져서다. 게다가 본격 수업을 받은 전문 바리스터의 실력은 아무리 해도 따라잡지 못한다. 맛의 단계를 미분화하는 전문가의 등장은 잘 된 일이다.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이제 섣불리 아는 체하지 않는다. 고급한 맛의 커피는 고도로 숙련된 사람의 몫이란 점을 알아버린 덕분이다.

오사카 골목, 가쓰라 강변 … 한 잔의 커피는 기억에 각인유난스럽게 비쳐지던 드립 커피가 시대의 대세가 된 느낌이다. 나를 비아냥거리던 이들 또한 자연스레 커피 애호가로 변해갔다. 그중 하나였던 한 후배는 슬그머니 커피 책까지 냈다. 온갖 확신의 근거란 알고 보면 제가 아는 것의 한계 속에 머문다. 우습게 알았던 분야나 경멸했던 상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직접 해 보아야 분야의 깊이를 알게 되고 추종의 대상으로 바뀐다. 누구라도 반전의 순간을 맞게 되는 게 세상사는 재미다.


세계 희귀종 커피가 즐비한 오사카와 고베, 교토의 커피 명가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골목길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커피 집 순례는 작년 여름에 누렸던 호사이기도 하다. 좋다는 커피를 두루 마셔본 결론이 하나 있다. 커피 역시 얼치기가 따라가지 못할 감각의 전문성으로 유지되는 분야란 점이다.


오사카의 오래된 커피 집에서 한 잔에 2000엔(약 2만원)이 넘는 ‘부르봉 쁘엥뛰’(Bourbon Pointu·프랑스령 뉴 칼레도니아 산 커피로 산출량이 적은 고급 커피, 드골 대통령이 즐겨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는 대단했다. 그랑 크뤼 급 와인을 마신 감흥과 비유해야 이해가 빠를지 모른다. 흙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풍미와 깔끔함은 고만고만한 커피들이 지닌 보편성을 무력화 시켰다. 한 잔의 커피는 기억의 각인으로 바로 남았다. 특별한 원두에 바리스타의 원숙한 기량이 더해져 완성된 조화의 맛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감각은 성장한다. 반복의 익숙함으로 차이는 점차 크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혀와 코는 그 상태를 기억한다. 근접한 향과 맛은 쾌감이고 멀어진 것들에선 아쉬움만 커진다. 일본의 오타쿠들이 찾아낸 좋은 커피들이 어디 하나 둘일까. 개개인의 개성만큼 달라지는 커피 종류와 손의 감각과 경험으로 뽑아낸 맛은 훌륭했다. 단순 반복의 익숙함뿐인 나와 명인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았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화 시키는 일본인들의 특별한 재주는 놀랄 만했다. 커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과 용품들의 중심지가 이태리에서 일본으로 바뀐 느낌이다. 거리 곳곳에 있는 자기 이름을 내건 커피 로스팅 전문점과 용품점의 숫자가 이를 잘 말해준다.


석탄을 넓게 깔아 지핀 불로 로스팅해 불 맛을 강조하는 커피도 있다. 열원이 넓게 펼쳐져 강력하고 고른 열이 원두를 균일하게 익히는 과학적 효과는 남달랐다. 일반 슈퍼마켓에서 파는 로스팅 커피의 수준도 상당했다. 같은 커피가 맛이 다르다면 남은 것은 언제나 만들어주는 사람의 역량에 달렸다.


감탄의 시선은 계속된다. 야외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도 보았다. 가랑비마저 뿌리는 해진 후의 교토 가쓰라 강변에서다. 꽤 큰 차양시설 아래엔 비를 피하려는 나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두 젊은이들만 남았다. 지친 몸은 커피를 원했을 것이다. 젊은이는 불룩한 배낭을 뒤져 익숙한 솜씨로 물을 끓였다.


가볍고 간편 …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의 결과커피를 내리기 위한 드리퍼는 처음 보는 물건이다. 노란색 천을 작은 망에서 꺼내자 저절로 콘의 형상으로 펴졌다. 신기했다. 여름날 자동차 창문에 붙이는 햇빛 가리개 마냥. 콘의 밑 부분 양쪽에 나무젓가락을 끼워 컵에 걸쳐 놓았다. 물을 따르자 풍기는 커피 향은 황홀했다. 너무도 간단히 드립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됐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마시는 커피는 마냥 여유롭다. 커피 향은 먹고 싶은 욕구를 증폭시키게 마련이다. ‘커피 마렵다’란 표현은 이럴 때 적절하다. 한 모금이라도 얻어 마시고 싶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펼쳐진 커피 한 잔의 흡인력은 강력했다.


합정동 주변에 개성 있는 점포들이 늘어났다. 또 우연이다. 새로 생긴 아웃도어 용품점에 여름에 봤던 노란색 드리퍼가 걸려있었다. 반가웠다. 초경량 등산용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개성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의 제품이란 걸 알았다. ‘몽벨’은 알피니스트 출신의 사장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물건들로 명성을 얻었다. 요즘 히트치고 있는 영화 ‘히말라야’에도 몽벨 옷을 입은 주인공들이 어른거린다.


몽벨이 만든 드리퍼라면 일단 안심이 된다. 커피 한 잔의 간절함을 작고 가볍고 편리하게 마무리시켰을 터다. 이전의 휴대용 드리퍼는 나선형의 철사를 펼쳐 종이 필터를 끼워 썼다. 소모품인 종이 필터도 없을 경우가 많은 게 산이다. 몽벨은 더 간편한 방법을 찾아냈다. 4g의 무게로 드리퍼와 필터를 겸하는 컴팩트 드리퍼다.


극세사 섬유와 탄성 높은 철사가 내용물의 전부다. 강인하고 가벼운 천은 속이 비쳐 보일 만큼 얇다. 드리퍼 콘의 형태는 둥글린 윗부분 속에 있는 형상기억합금의 몫이다. 지지대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나 젓가락을 끼워 넣으면 된다. 이 단순한 물건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의 결과다.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불편의 개선 의지가 동인이다.


몽벨의 드리퍼를 덜컥 사들였다. 우스워 보이는 드리퍼 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 때문이다. 단순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살아보면 안다. 좋은 물건엔 과정의 흔적이 반드시 남아있게 마련이다.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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