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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협상력 한계치 49’의 원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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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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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안호영 주미대사가 위안부 합의안 발표 직후 마이크 혼다 미 하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혼다 의원은 지난 20년간 한국 입장을 대변해 준 고마운 분이죠. 혼다 의원은 “매우 실망했다”며 “고노 담화와 다를 게 뭐냐.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따졌다고 합니다. 안 대사는 “일 외상이 직접 총리를 거명하며 사죄를 표했고, 도의적 책임에서 ‘도의적’이 빠졌다. 국제법적 의미가 크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혼다 의원은 환영과 우려가 뒤섞인 ‘성명’으로 대체했습니다. 고뇌가 느껴집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51(한국)대 49(일본)의 외교 승리”라고 평가합니다. 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그나마 선방해 49(한국) 대 51(일본)이 됐다고 봅니다. 즉 49를 넘어서는 결과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단 이야기입니다.

 ‘협상력 한계치 49’의 이유를 짚어보죠. 복기는 중요합니다. 한·일 간에 사할린 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협상 문제가 남아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시간이 걸려도 인권 차원에서 확실하게 풀되, 정상회담은 쿨하게 열어 다른 현안들을 논의했어야 합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엄청 강하게 나가지만 중·일 정상회담은 유연하게 나서는 걸 보십쇼. 근데 우리는 3년 가까이 한 세트로 몰아치다 자승자박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역사적’으로는 한국 편일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짜증내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는 바로 위안부 문제의 협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요. 역사와 정치를 분리했다면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별다른 카드도, 묘수도 없으면서 강공 일변도로 몰고 간 외교라인의 책임이 큽니다.

 협상은 끝났습니다. 순간적 정치적 레토릭(수사)은 얻어냈고, ‘국제사회에서의 비판 자제’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합의’란 영구적 물리적 부담을 혹으로 떠안게 됐습니다. 소녀상 이전 문제란 골치 아픈 숙제도 생겼고요. 이 모든 게 ‘잃어버린 한·일 외교 3년’의 원죄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3조에 써 있는 대로 제3국까지 끼어 들인 ‘3인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위안부 한·일 끝장 승부’에 나서는 방안도 있었지만 그걸 할 엄두도, 용기도, 힘도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을 했어야 했고, 전략 부재와 힘에서 밀려 이번 합의안이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노동개혁법 처리가 미뤄지자 영국의 역사가 존 로버트 실리의 “역사란 과거의 정치이며, 정치란 현재의 역사”란 말을 인용했습니다. ‘역사 심판론’이겠죠. 전 이번 위안부 합의 결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박 대통령이 택한 ‘현재의 역사’에 대한 평가의 몫은 미래의 정치에 맡겨두는 수밖에요. 하지만 협상력 한계치 49의 원죄를 초래한 외교라인의 책임을 묻는 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봅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