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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필사, 자녀들에 믿음의 유산 남긴다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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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성경필사를 하며 영어성경 4권, 한글성경 1권을 완성한 김용순(가운데)씨는 성탄절을 맞아 모인 4남매에게 필사본 성경 1권씩을 선물했다. 왼쪽은 남편 김영호씨, 오른쪽은 서울에서 온 3녀 앨리스 김씨. 작은 사진은 김씨가 필사한 성경전서 영어본(사진 왼쪽)과 한글본. 박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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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을 합친 것이 성경전서. 어지간한 이는 일년에 한 번 통독하기도 버겁다. 하물며 성경전서를 필사한다는 것의 어려움은 형언조차 힘들다.

이렇게 힘든 성경전서 필사를 다섯 차례나 마치고 현재 6권째 필사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라미라다에 거주하는 김용순(77세)씨다.

1993년부터 시작한 일이니 한 권을 마치는데 평균 2년 넘게 걸린 셈이다.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을 김씨는 왜 시작했으며 지속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를 들어봤다.

김용순씨는 남편 김영호(79세)씨와 함께 1980년 미국에 왔다.

이민 초기부터 옷가게를 경영했지만 경험도 없는 이민자에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건강도 나빠지고 벼랑끝이 보이는 듯 했다. 김씨의 잠 못 이루는 밤도 늘어만갔다. 자녀(3녀1남)를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던 김씨 부부의 이민생활은 뿌리채 흔들렸다.

마음의 고통이 심해지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 김씨의 마음을 때린 성경구절이 있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란 요한복음 1장12절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김씨는 매년 성경 전체를 다섯 번 읽고 성경전서를 영어로 4번, 한글로 4번 필사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냥 글자를 옮겨적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오, 탈자 없이 정성을 다해 썼다. 잘 몰랐던 구절의 뜻을 깨우쳐가며 험한 고비를 인내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금까지 틈나는대로 쓰고 있다."

어려움도 많았고 고비도 있었다. "눈이 아프고 시력이 떨어지고 손가락에 굳은 살이 잡히며 어깨도 아파 여러 차례 포기하려고 했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쓰다보니 지금은 시력도 회복되고 건강도 좋아졌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김씨는 성경필사를 통해 일석삼조를 얻었다. "성경공부를 하며 지혜를 얻고 인내를 배웠다. 영어성경 필사를 할 때는 모르는 단어는 전자사전으로 뜻을 찾아가며 적다보니 영어공부도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는 힘을 얻었던 것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영어성경 4권, 한글성경 1권의 필사를 마쳤다. 지금은 한글성경 2권째를 쓰고 있는데 절반 가량 작업을 마쳤다. 요즘 손이 아파 힘들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2~4쪽씩 쓰고 있다. 성경 1권 필사하려면 1800쪽을 써야 한다. "처음 완성한 한글성경은 공책에 썼다. 그러다보니 공책이 접히는 부분엔 글씨를 쓰기 힘들었다. 그 다음부턴 한국의 성경옮겨쓰기 운동본부에서 나온 필사용지와 가죽 표지가 포함된 필사세트를 구입해 쓰고 있다."

김씨 부부는 올해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LA에 사는 둘째 딸과 막내아들 부부, 미네소타 주에 사는 장녀 부부, 서울에 사는 셋째 딸 부부와 8명의 손주들까지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다.

김씨는 네 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영어성경 1권씩을 나눠줬다.

어머니가 성경필사를 시작하던 해 한국으로 간 3녀 앨리스 김씨는 가보가 될 성경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어머니가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 잘 몰랐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쓴 성경을 보니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이걸 썼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도 성경구절을 옮겨 적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임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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