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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사실상 협상 지휘, 미국 끌어들여 아베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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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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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4시29분, 청와대 접견실.

[위안부 협상 타결] 결단
“일본 조치 조속 이행 가장 중요
국교정상화 50년 안 넘겨 의미”
12차례 한·일 국장급 협의마다 보고받은 후 직접 지침 내려

 박근혜(얼굴) 대통령이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후 청와대를 찾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을 맞았다. 박 대통령이 먼저 와 기시다 외상을 기다리다 미소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기시다 외상도 미소 띤 얼굴로 인사한 후 박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며 수차례 고개를 끄떡였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 협상 결과가 성실하게 이행됨으로써 한·일 관계가 새로운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 결과가 양국 모두에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길 기대한다. 특히 11월 2일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대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넘기지 않고, 양측이 노력해 합의를 이뤄내게 돼 더욱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일본 측의 조치가 신속히, 그리고 합의한 바에 따라서 성실하게 이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을 사흘 남겨두고 박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자 난제였던 위안부 문제에 결단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 이래 최근까지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압박하며 결단을 촉구해왔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스스로 고리를 푸는 결심을 했다.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한 건 합의에 완전히 만족할 순 없지만 3년간 공을 들여 얻어낸 최선의 결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청와대 참모들이 전했다. 한 참모는 “그동안 협상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잘 알고 있었다”며 “서로 얼마나 얻어내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얻어낸 것이 많다”고 말했다. “국가 간 협상에서 100대 0은 없지 않으냐”고도 했다. 다른 참모는 “일본이 제안했다 거절당한 ‘사사에안’은 도의적 책임에서 추진됐지만 이번 합의안에는 도의적이란 표현이 없다”며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점과 군의 관여를 인정한 점, 일본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 등은 상당히 진전된 결과”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나오기까지 드러나진 않았지만 사실상 협상을 지휘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평소 정책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협상을 박 대통령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8개월 동안 국장급 협의가 12차례 있었는데 박 대통령은 협의 때마다 보고를 받은 뒤 직접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특히 협상이 고비를 맞을 때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곤 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물밑에선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도 움직였다고 한다. 야치 국장은 아베 총리의 ‘외교 브레인’으로 불린다.

 아베 총리가 협상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한 데에는 박 대통령의 대미 외교도 작용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최근 박 대통령의 외교를 ‘고자질 외교’라고 비판한 일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부 인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본을 압박한 것으로 안다”며 “이는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협상 상황을 미국 측에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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