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정명훈과 재계약 보류 … 사실상 결별 수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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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간 진흙탕 싸움을 벌여오던 서울시향 사태가 결국 ‘정명훈 퇴진’으로 귀결될 것인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8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정명훈(62) 예술감독과의 재계약을 보류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정 감독과 서울시향이 결별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 감독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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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회에 참석한 서울시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날 핵심 안건은 정 감독의 재계약 여부가 아닌 ‘포스트 정명훈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며 “구체적으론 ‘지휘자 발굴 위원회’를 조속한 시일 내에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금껏 정 감독과의 재계약 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과는 온도 차가 큰 셈이다. 서울시향 최흥식 대표 역시 “최근 불거진 여러 잡음이 (정 감독) 재계약 보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박현정 전 대표 ‘막말 투서’로 사퇴
박씨 “예술계 마피아가 마녀사냥”
검찰서 무혐의 … 고소한 직원들 입건
정씨 부인은 ‘투서 배후’ 혐의 받아

 지난해 말 박현정(53) 전 대표의 막말·성추행 의혹으로 불거진 서울시향 사태는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경찰 조사를 받던 직원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 예술계에선 일찍이 볼 수 없던 난투극이었다. 정명훈-박현정 간 파워 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던 사태는 최근 정 감독 부인의 개입 정황이 포착된 데 이어 서울시가 정 감독과의 재계약에 미온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양측을 저울질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결국 박현정의 손을 들어줬다”란 평가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

 서울시향 사태는 지난해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 전 대표의 성추행과 인사 전횡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음해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맞섰고, 사태는 진실 공방으로 비화됐다. 상호 고소와 수사 의뢰도 이어졌다. 사태가 반전을 보이기 시작한 건 검경 수사가 진행되면서다. 지난 8월 종로서는 “피해자 진술 외에는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치 않다”며 박 전 대표의 성추행 혐의 등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은 박 전 대표를 무혐의 처분했다. 외려 서울시향 직원들이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 11월 곽모(39)씨 등 박 전 대표를 고소한 서울시향 직원 10여 명을 박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했다.

 급기야 최근엔 정 감독 부인의 배후설까지 터졌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달 중순 박 전 대표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도록 서울시향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로 정 감독의 부인 구모(6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직원들이 투서를 작성·배포하도록 정 감독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백모씨에게 지시한 혐의다.

 다만 지난달 경찰이 신청한 곽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거나 명확하지 않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기각한 바 있어 최종 수사 결과를 단정 짓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구씨가 해외 체류 중이고, 백씨 역시 최근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실체 규명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화계 뿌리 깊은 배타성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건이 터진 직후 박 전 대표는 “외부에서 왔다는 이유로 예술계 마피아들이 나를 마녀사냥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삼성생명 전무·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를 역임했던 박 전 대표가 예술계와 인연을 맺은 건 서울시향이 처음이다.

최민우·김나한 기자, 류태형 객원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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