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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의 습격에 빨간불 켜진 농산물 가격

중앙일보

입력

농작물 가격에 빨간불이 켜졌다. 심술궂은 ‘아기 예수(El Nino·엘니뇨)’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18년 만에 등장한 ‘수퍼 엘니뇨’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우루과이 등은 최악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에서는 고온과 가뭄으로 목초가 사라져 소와 양이 풀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커피·야자유·원당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동부 태평양 일대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북극의 찬 바닷물은 바닷속을 따라 흐르다가 적도 부근에서 바다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해수의 이동이 약화돼 찬 바닷물이 해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동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간다. 더워진 바닷물로 인해 육지의 온도도 올라가고 해수 증발이 많아지면서 태평양 동쪽인 남미에는 홍수가 발생한다. 반면에 서쪽인 호주 등에는 가뭄이 발생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난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엘니뇨는 1997~98년 이후 가장 강력하다”고 밝혔다. 수퍼 엘니뇨는 내년 1~2월까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엘니뇨 탓에 세계 밀 생산량의 14%를 차지하는 호주의 밀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지역에서는 폭우로 인해 설탕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전세계 쌀 생산량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의 커피 생산량도 올해 10%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엘니뇨의 영향이 농산물 가격에 제대로 반영될 때까지는 보통 6개월의 시차가 있다. 그렇지만 시장은 이미 엘니뇨의 심술에 출렁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엘니뇨로 인해 올 하반기 농작물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6월 이후 말레이시아산 팜유 값은 9.6%, 원당 가격은 25%나 올랐다. 설탕과 유제품 가격도 강세다. 엘니뇨가 오세아니아 지역의 파종과 생장기인 내년 1~2월까지 이어지면 농산물 가격은 더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엘니뇨의 여동생 격인 라니냐(La Nina·여자 아이)다. 내년 7~8월 엘니뇨가 라니냐에 바통을 넘기면 농작물 가격은 더 불안해질 전망이다. 라니냐는 엘니뇨의 정반대 현상이다. 적도 부근에 차가운 해수가 많이 올라와 동부 태평양 일대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지는 걸 말한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와 인도·호주 등에는 홍수 위험이 커진다. 북미와 남미에는 가뭄이 발생할 수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한파 피해도 입을 수 있다.
87~88년과 97~98년, 2009~20910년에는 엘니뇨와 라니냐가 짝 지어 지구촌을 강타하며 농산물 시장의 가격을 뒤흔들었다. 커머더티 웨더 그룹은 “내년 여름 엘니뇨가 라니냐로 전환하면 미국 중서부에 고온건조한 날씨가 나타나 밀과 옥수수 등 작물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CME그룹의 에릭 놀런드 이코노미스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강한 엘니뇨가 왔기 때문에 라니냐도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라니냐가 닥치면 2017년에 대두와 옥수수, 밀 등 곡물 가격이 50% 이상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7월 라니냐 현상이 나타난 뒤 1년 동안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값은 21%, 대두 가격은 39%나 올랐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설탕값은 67% 폭등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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