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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재 키워 경제 부흥시키는 게 남북통일 비용 줄이는 지름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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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12면

박찬모 1935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58년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69년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 컴퓨터를 배우다 흥미를 느껴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메릴랜드대 컴퓨터공학과 창설을 주도, 교수가 됐다. 90년 포항공대 교수로 부임했고, 2003~2007년 포항공대 총장을 지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과학기술포럼(이사장 김시중) 주최로 북한 평양과학기술대학(PUST) 박찬모(80·사진)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인 박 교수는 이달초 평양에서 돌아왔다. 그는 최근 평양과기대의 운영 상황과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소개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남한의 하드웨어 기술을 접목한다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휴전선에 공단을 짓고 남북 정보기술(IT) 협력을 하면 좋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강연과 별도로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모란봉악단을 모델로 만든 애니메이션. ‘열심히 배우자’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위). 평양 시내의 택시들. [사진 박찬모 교수]

-평양과기대 현황에 대해 소개해달라. “평양 시내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2009년 설립됐고, 2010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생이 500명, 대학원생이 80여 명이다. 교수는 외국인과 외국 국적의 한국인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한국 정부의 ‘5·24 조치’로 인해 한국 국적 교수는 없다. 나는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외부 총장과 북한 측 총장이 함께 운영한다. 모든 강의는 영어로 한다. 학부생은 처음 1년 동안, 대학원생들은 6개월 동안 영어를 배운다. 컴퓨터전자공학대학·국제금융경영대학·농생명식품공학대학으로 이뤄졌다. 의학대학원 설립도 진행 중이다.”


-해커를 양성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사이버 테러리스트를 양성한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다. 개설된 강의 과목을 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가상현실(VR) 등을 가르친다. 미국 상무부에서 정한 북한 관련 제재 목록에 든 과목은 교육과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미국 국적 교수도 많은데, 이 제재 목록을 안 지키면 처벌을 받는다. 서방 세계에 해로운 것은 절대 안 가르친다.”


-평양과기대를 설립해 지원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북한 유일의 기독교 기반 사립대학이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서울침례교회 등이 후원을 많이 한다. 교수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숙식만 제공받는다. 자원봉사 개념이다. 6개월은 평양에서 강의하고 나머지 6개월은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버는 식이다. 평양과기대의 역할은 국제화된 고급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길러 북한 경제를 부흥시킨다면 남북한이 통일될 때 통일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경제부흥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용적인 것, 실질적인 것을 가르친다. 이 대학의 비전은 ‘상상을 초월한 국제화 대학’이다.”


-평양과기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는데, 같은 메릴랜드대에 교수로 있던 김호길 교수가 포항공대 초대 총장으로 오면서 나를 불러 포항공대로 오게 됐다. 포항공대에 있으면서 평양과기대 설립을 추진하던 김진경 총장을 돕게 됐고 포항공대 총장 임기를 마치고 그쪽으로 가게 됐다.”


-학생 선발은 어떻게 하는가. “처음에는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 평양컴퓨터기술대학 등에서 1~2년 다닌 학생들 중 우수 인재를 뽑았다. 해당 대학 교수들이 과기대 입학을 권유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학생은 필기시험과 구두시험으로 뽑는데, 전적으로 북한 측에서 진행한다. 최근에는 대학 재학생이 아닌 고등중학교 학생들을 일부 뽑았고, 내년부터는 고등중학교 학생 중에서 선발하게 된다.”


-학생들 생활은 어떻게 하나.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대학원생은 2인 1실, 학부생은 4인 1실이다. 올해 처음으로 여학생 10명을 뽑았다. 북한에서는 남녀 학생을 같은 건물에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학생은 교수 숙소건물에서 지낸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장유유서 의식이 강하다. 학부생들은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대학원생이 나타나면 자리를 양보한다. 인터넷은 컴퓨터실에서만, 그것도 대학원생만 사용할 수 있다. 학부생들도 졸업논문 작성 마지막 시기 두 달 동안에는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김책공대에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김일성대학에서도 인터넷 허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이 교수를 면담할 때에는 꼭 두 명 이상이 함께 온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감히 교수들 앞을 가로질러 가지도 못했다. 지금은 ‘소리(죄송합니다)’하면서 지나간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의 수준은. “팀별로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면 수준이 높다. 모란봉악단을 모델로 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다양한 춤 동작을 보여주는 ‘힙합 댄서’ 프로그램은 매우 뛰어났다. 나는 학점을 잘 안 주는 편인데, A플러스를 줬다. 학생들이 논문 ‘감사의 글’에 적은 게 재미있었다. ‘최신 소프트 기술과 세계적인 추세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우리는 이를 미래 투쟁을 위한 자본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외국으로 대학원 과정 학생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2012년에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으로 보낸 3명 가운데 1명이 우수상을 받고 졸업했다. 그 대학에서는 학생 5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의 컴퓨터·IT 기술은 어떤가. “북한에서도 ‘판형 컴퓨터’라고 해서 태블릿PC가 ‘삼지연’ 상표를 달고 판매된다. 하지만 부품은 대부분 중국 제품으로 알고 있다. 삼성 부품이 들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태블릿PC가 많이 보급돼 초등학생도 들고 다니는데, 거기에는 교과서 내용이 저장돼 있다.”


-평양 시민들의 요즘 일상은 어떤가. “북한에도 휴대전화가 370만 대 정도 보급됐다고 들었다. 휴대전화는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게 다르다. 외국인은 외국인끼리, 그리고 외국으로 통화하는 것은 자유롭지만 북한 주민과는 통화를 못한다. 북한 주민들도 외국인과는 통화를 못한다. 평양 시내에는 택시 회사가 5곳 있다. 택시를 타고 ‘나래 카드’로 결제할 수도 있다. 요즘은 북한 주민들이 과거와는 달리 외국인들과 스스럼 없이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곤 한다. 외국인들은 어린이들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나눠주기도 한다. 평양에 미래과학자 거리를 크게 조성했다. 대동강에 있는 무지개 선박에는 식당과 노래방도 있다. 무지개 선박 입장료는 북한 돈 5000원인데, 공정 환율로는 50달러이지만 시장에서는 1달러가 8750원이라서 실제로는 1달러도 안 되는 셈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남북한 협력 방안은. “과거부터 북한은 과학기술을 중시해왔다. 특히 수학과 기초과학을 중시한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다. 소프트웨어는 두뇌와 창의력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하드웨어와 북한의 소프트웨어를 합치면 국제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IT기술 전체로는 남북한 격차가 심하다. 남북한 교류협력에서는 신뢰와 화해 마인드가 중요하다. 자주 접촉해야 신뢰가 쌓인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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