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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후보자 유일호, 어떤 정책 펼까…평소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소신, 재정건전성 강화 정책에 힘 쏟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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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저출산·고령화와 남북통일 등 장기적인 재정위험 요인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고, 세계금융위기에서도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정건전성이 있었다.”

20년 전 ‘연금 재정위기’ 경고
의원 때 탈세 막는 개정안 발의도
최경환식 부동산 정책 유지 전망
총선용 '선심 정책' 제동이 첫 과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4년 전 낸 책 『국회의원 유일호의 경제이야기 정치이야기』에서 강조한 말이다.조세·재정 전문가인 그가 새 경제팀을 이끌 사령탑으로 지명되면서 그의 정책 운용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 후보자의 저서를 비롯해 과거 발언·연구논문·의정보고서 등을 분석해 본 결과 그는 재정건전성과 세제투명성을 일관성 있게 주장해왔다.

보편적 복지보다 맞춤형 복지 주장
유 후보자는 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89년 미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본격적으로 재정 정책을 연구했다. 93년 보고서 ‘한국의 노령화 추이와 노인복지대책’을 살펴보면 “한국은 인구 고령화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정년이나 연금 받는 시점을 늦춰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년 전부터 인구 노령화가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의 지출을 늘려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을 경계했다. 대학 선배이자 KDI에서 함께 근무한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은 “당시 유 후보자는 복지 확충에 따른 재정 확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요즘 이슈인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재정위기가 닥칠 수 있으니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꾸준하게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정부 부채 증가에도 부정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부채는 957조3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4.5% 수준이다. 공공부문 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각종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부채를 모두 합친 것이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2011년 753조원에서 3년 만에 200조원 이상 늘었다. 최경환 전 부총리의 2기 경제팀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면서 정부 빚이 빠르게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유 후보자는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게 세계적인 공감대였고, 한국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하지만 경제는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여러 거시정책에 대한 미세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책의 틀을 유지하되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방안을 내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려면 안정적인 세입을 확보해야 한다. 유 후보자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위한 세제 개편에 관심이 많다. 2011년 저서 『건강한 복지를 꿈꾼다』에서 “증세보다 비과세 감면 축소, 탈세 방지 등 조세 개혁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18?19대)일 땐 세제 투명성을 높이는 법안을 여러 개 발의했다. 2011년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세금 체납자뿐 아니라 탈세자에까지 확대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유후보자는 ‘부자 감세’ 논란이 한창이던 올 2월 “법인세를 10% 높여봐야 4조~5조원 정도 더 거둘 수 있는데 이 정도로는 적자를 메우기 어렵다”며 “무상복지를 전면 재검토해 복지가 정말 필요한 분들한테 가는 쪽으로 복지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도 이어질까. 그가 올 3월 국토교통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 “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주택시장의 회복세를 공고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주택시장의 정상화와 서민 주거복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8개월에 불과한 짧은 임기 탓에 뚜렷한 실적을 내지는 못했다.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뉴스테이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유일한 성과다. 뉴스테이는 서민·중산층이 최장 8년까지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월세 주택이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 뉴스테이법도 국회 통과가 불확실했던 상황이었는데 유 후보자가 두 달 가까이 야당 의원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덕에 처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유 후보자는 2008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택시장 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규제를 풀고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 후보자는 부총리 내정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공급 과잉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규제 완화를 통한 매매시장 정상화라는 기존 부동산 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의원 시절 박 대통령 옆자리 앉아 인연

유 후보자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힌다. 2011년 당시 성균관대 교수이던 안 경제수석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건강한 복지를꿈꾼다』에서 유 후보자는 “한국형 복지국가로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모든 국민에게 생애 단계별로 ‘평생맞춤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한나라당의 복지 비전으로 제시할 것을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에 증세 없는 복지, 구조개혁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스란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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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국회 기재위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과 유 후보자(왼쪽)가 얘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 후보자는 18대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박 대통령 옆자리에 앉으면서 친분을 쌓았다. 당시 그가 박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이후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며 친박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유 후보는 말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라며 “소통 능력이 뛰어나 당정 간의 원활한 조율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외로 뚝심 있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라는 평도 나온다. 김종석 원장은 “유 후보자가 여간해서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일을 추진할 때는 단호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 후보자가 국토부 장관으로 당정협의회에 참석했는데 여러 차례 의원들의 날 선질문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함께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귀국 후엔 KDI에서 한솥밥을 먹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랫동안 봐온 그는 합리적인 원칙론자”라고 말했다. 그는 “유후보자가 당정 간의 균형뿐 아니라 재정전문가답게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며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균형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 후보자가 재정건전성 강화라는 소신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기재부 관계자는 “학자와 정치인으로 경제정책의 줄기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어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에는 큰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쏟아질 여당의 ‘선심성 정책’에 적절히 제동을 거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과제다.

염지현 기자 yjh@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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