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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골프 대표 티켓, 세계 톱10 선수도 바늘구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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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3면

골프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정식 종목이다.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04년 이후 112년 만이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의 메달 전망은 매우 밝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여자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기는 매우 힘들다. 올림픽에는 국가별 쿼터가 있고 한국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워낙 많아 내부 경쟁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 보다 국가대표 되기가 더 어렵다”는 양궁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골프와 양궁은 매우 닮은 종목이다. 멀리서 무언가를 목표한 지점에 최대한 가까이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 선수들이 매우 잘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축구 같은 격렬한 스포츠 보다는 바둑 같은 멘탈 스포츠에 가깝다.


2010년 한 골프 용품사의 주최로 이보미 등 골프 선수들과 이가람 등 양궁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도 했다. 골프 선수들은 아이언으로 골프공을 쳐 양궁 과녁을 맞추고,양궁 선수들은 화살을 쏴 골프홀 크기의 타겟에 명중시키는 방식이다. 양팀은 70m에서 똑같이 2번씩 성공했다. 120m 거리에서는 강한 바람 탓에 아무도 맞추지 못해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양궁은 올림픽을 위해 국내 대표 선발전을 치른다. 여기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최고의 선수라도 올림픽에 못 나갈 수 있다. 골프는 그런 운이 별로 작용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의 성적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짜여진 세계랭킹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선수 중 톱 4에 들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올림픽 골프는 남녀 각 60명씩 참가해 4라운드 스트로크 경기로 우승자를 가린다. 한 나라에 최대 2명까지 배정되지만 세계랭킹 15위 이내 선수가 많으면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한국 여자골프는 4명을 꽉 채워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 25일 기준으로 박인비(세계랭킹 2위), 유소연(5위), 김세영(7위), 양희영(8위)이 국가대표 후보다. 현재 세계랭킹 순위로는 9위인 김효주와 10위인 전인지도 못 간다. 이밖에도 장하나(14위), 이보미(15위), 최나연(19위) 등도 올림픽 꿈을 접어야 한다.


현재 한국 세계 랭킹 상위 4명이 내년 7월 11일 최종 엔트리 마감일까지 그대로 랭킹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박인비 정도만 안정권으로 볼 수 있다.


내년 상반기 성적따라 바뀔 수도대표 후보는 많다. 20위 바깥에도 안선주(21위), 이미림(22위), 고진영(26위), 박성현(28위), 이정민(32위), 신지애(33위) 등이 줄을 서 있다. 충분히 메달을 노릴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려면 세계랭킹 10위 이내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나 일본에서 최고 선수가 돼 랭킹을 올릴 수 있지만 올림픽에 나가기에 충분할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뛰는 선수 보다는 오히려 현재 랭킹은 낮더라도 LPGA 투어에서 뛰는 이미향(34위), 최운정(35위), 이일희(40위) 등이 더 확률이 높다. 현재 랭킹 50위에 처져 있는 백규정도 내년 상반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 랭킹을 확 끌어올려 올림픽에 갈 수도 있다. 김세영과 전인지는 올림픽 출전 가능성을 감안해 LPGA 투어 진출을 결정했기 때문에 후보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올림픽 골프의 국가 쿼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경우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도 참가한다. 세계랭킹 200위 넘는 선수가 22명, 300위가 넘는 선수가 11명이나 참가한다. 현재 기준으로 세계랭킹 448위 리사 맥클로스키(콜럼비아)와 509위 빅토리아 러브레이디(브라질)도 나가게 된다. 러브레이디는 개최국 선수라서 그렇다고 쳐도 올림픽에 출전하기엔 실력이 한참 모자란다.


여자 골프 참가자 60명 중 세계랭킹 100위 이내 선수는 35명뿐이다. 세계랭킹 100위 내 선수 중 80명 이상 참가하는 메이저대회에 비해 우승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승 경쟁을 할 선수는 30명 선이다. 그 중 알짜 4명을 보유한 한국 선수 중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다. 한국 여자골퍼들이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한국 골프 선수는 금메달 3억 원, 은메달 1억 5000만 원, 동메달은 1억 원을 받는다.


남자 대표는 안병훈·김경태 유력남자골프의 경우 2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러피언투어 신인왕을 탄 안병훈(랭킹 28위)과 김경태(60위)의 출전 가능성이 높다. 안병훈은 “부모님이 뛰었던 올림픽 무대에 내가 출전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올림픽에서 안병훈의 아버지 안재형은 동메달을, 어머니 자오즈민은 은메달을 땄다. 안병훈이 금메달을 따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올해 일본 투어에서 상금왕과 MVP가 된 김경태는 “올림픽은 출전 선수가 60명에 불과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막강한 미국 선수들이 점수를 합산하면 이기기 어렵지만 팀 경기가 아니라 개인전이어서 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국가별 쿼터로 상위 랭커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메이저대회보다 성적을 내기가 쉬울 수 있다는 얘기다.


남자 골프의 정상급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과 올림픽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다르다. 전 세계랭킹 1위인 아담 스콧은 “올림픽 참가가 우선순위는 아니다. 내년에도 메이저 대회 위주로 일정을 짤 건데 일정에 별 무리가 없다면 올림픽에 가겠다”고 말했다. 일정이 버거울 경우 출전 자격이 돼도 안가겠다는 뜻이다. 현재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도 올림픽에 참가하겠지만 마스터스 같은 메이저 대회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랭킹 2위 로리 매킬로이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는 싶지만 육상 선수들처럼 4년간 모든 것을 투자해 준비해서 참가하는 그런 대회는 아니다. 골퍼들은 아마 일주일 전쯤에나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1904년 세인트 루이스 올림픽에서 골프는 정식종목이었다. 그런데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참가자가 단 한 명에 불과해 대회를 폐지했다. 그 당시 골퍼들이 “기존의 좋은 대회가 있는데 올림픽에 왜 대회를 또 만드느냐”고 보이콧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올림픽 보다 메이저 대회를 더 높이 쳤다. 현재 최고의 남자 골퍼들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 보다 마스터즈 대회에 우승해 그린재킷 입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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