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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 할머니 69명의 ‘손자’가 된 고교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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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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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들이 사는 경로당을 한국교원대부설고교 학생들이 방문했다. 왼쪽부터 춘홍자(69) 할머니, 박솔내(17)양, 전옥년(67) 할머니, 정성윤(17)군, 현춘자(67) 할머니, 양은우(17)양. [프리랜서 김성태]

고국 땅을 밟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할린 한인 동포들에게 ‘손자’를 자처한 학생들이 있다. 정성윤(17)군 등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부설고등학교 학생 10여 명은 지난해 6월부터 오송에 있는 사할린 동포 집단 거주지를 찾아 말벗해주기, 영상통화, 음식 만들기 등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오송에는 사할린 한인 동포 69명이 살고 있다. 2008년 한국으로 건너 온 1세와 2세 동포들로 대부분 70세가 넘은 고령이다. 애초 80명이 건너왔지만 지병 등으로 11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청주 교원대부설고 학생들
작년 6월 동아리 만들어 매주 방문
사할린 동포 도울 심포지엄도 개최

 “학교에 입학해 우연히 오송복지관에서 사할린 동포분들을 뵙게 됐어요. 평생 소원으로 고국 땅을 밟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경로당에서 고립된 채 살고 계셨어요. 동포분들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보듬기 위해 봉사동아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정군은 친구들과 ‘사할린희망캠페인’이란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이 있는 날엔 격주로 오송을 찾았다. 정임자(71) 할머니는 “몇 번 찾아오다 그칠 줄 알았는데 늘 손자처럼 안부도 묻고 다리도 주물러 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1년 6개월 동안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가장 호평받은 것이 인터넷 영상통화다. 사할린 동포들이 떨어진 가족과 오랫동안 연락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군이 KT를 찾아갔다. KT 사회공헌팀에 부탁해 어르신들이 수시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인터넷 망을 연결하고 영상통화 프로그램도 설치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무료통화 방법도 알려줬다.

 올 초 사할린을 직접 방문해 1세대들의 참상 등을 구술받아 기록한 정군은 26일 청주에서 ‘전국 고등학생 사할린 심포지엄’을 연다. 전국에 있는 고등학생 70명이 참석해 사할린 동포들을 도울 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정군은 “사할린 동포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발표하고 그 결과를 공유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겠다”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 관심과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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