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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된 주민 손발 돼준 ‘메르스 머슴’ 옥천 공무원 16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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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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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옥천군수가 주민인 정병곤 할머니를 등에 업고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문성 팀장, 정 할머니, 김 군수, 임순혁 옥천군보건소장, 이경숙 옥천군보건소 팀장.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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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진은 당시 상황을 보도한 중앙일보 6월 8일자 1면 지면. [프리랜서 김성태]

“아들 노릇 대신해 주느라 애썼어. 참말로 고마워.”(할머니)

2015 새뚝이 ③ 사회

 “제가 뭐 한 게 있나유. 엄니가 고생 많았어요.”(이 팀장)

 지난 17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세산리. 이문성 옥천군 공간정보팀장이 정병곤(80)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앉았다. 정 할머니는 지난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90번 환자가 발생한 동이면에서 자가 격리됐던 주민이다.

 “천식이 심해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집이었어요. 할머니도 중풍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어 어려움이 많으셨죠.” 이 팀장은 격리된 노부부를 위해 보름 동안 아들 역할을 했다. 쌀·김치·고기·계란 등 반찬거리가 될 만한 음식을 손수 가져다줬다. 필요하면 보건소에서 혈압약을 대신 받아 집 앞에 갖다줬다. 외지에 나간 자식들을 대신해 이 팀장은 출퇴근길에 할머니 댁을 꼭 들러 대문 멀리서 안부를 물었다.

 메르스 광풍이 인구 5만의 시골 마을에 불어닥친 지난 6월 8일. 옥천군은 90번 환자와 동네 병·의원을 다녔던 옥천읍·동이면·군서면 주민 80명이 격리됐다. 추가 확진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메르스는 순식간에 마을 분위기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저 동네에서 나온 농산물을 먹으면 역병에 걸린다”는 소문까지 나돌며 주민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이들을 돌본 건 옥천군 보건소 직원을 비롯한 공무원 160명이다. 김영만(64) 옥천군수는 “격리된 마을 주민 대부분 70세를 넘긴 고령자가 많았다”며 “전화 예찰로는 한계가 있어 직원 160명을 지정해 격리 해제될 때까지 2인 1조로 주민을 돌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주민 관리는 단순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이 부탁하면 반찬거리를 배달해 주거나 공과금을 대납하고 생활용품도 전해 줬다. ‘격리’란 말 뜻을 몰라 항의하는 주민에, 농번기에 밭일을 하러 나간 주민들도 발품을 팔아 설득했다. 옥천군보건소 이훈명(33)씨는 “당시 가뭄이 워낙 심해 양수기를 가져다 마른논에 물을 대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군수는 직접 마을을 돌며 방역을 했다. 지붕과 장독대까지 구석구석 소독약을 뿌리며 직원들과 힘을 보탰다. 옥천은 메르스 90번 환자 발생 후 추가 확진자 없이 15일 만에 모든 주민의 격리가 해제됐다. 그사이 옥천군 직원들에겐 ‘메르스 머슴’이란 별명이 붙었다.

옥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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