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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11세 딸 굶겨 16㎏ … “동거녀 강아지는 포동포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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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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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11시쯤 인천시 연수구의 한 수퍼마켓. 카운터를 지키던 주인아저씨의 눈이 번뜩였다.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낯선 여자아이가 선반 위에 있던 봉지를 뜯어 과자를 먹다가 빵 봉지가 담긴 바구니를 집어들고 그대로 달아났기 때문이다.

딸 2년간 집에 갇혀살다 도망쳐
늑골 부러진 채 빵 훔치려다 잡혀
아빠 툭하면 때려 … 동거녀도 가담

직업 없이 인터넷게임 하던 아빠
경찰에 잡힌 뒤에도 “강아지 잘 있나”

 “어린 녀석이 벌써 도둑질이라니. 부모님께 알려서 크게 혼을 내라고 해야겠군.”

 아이를 잡고 추궁하던 수퍼 주인은 깜짝 놀랐다. 이날 인천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영하 6도로 쌀쌀했는데 맨발의 아이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비쩍 마른 몸 곳곳에서 오래된 상처와 멍 자국도 보였다. 수퍼 주인은 경찰에 연락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조심스러운 말도 덧붙였다. 키 1m20㎝, 몸무게 16㎏. 경찰이 확인한 아이의 체격은 이랬다. 영양 부족 탓인지 몸무게는 겨우 4~5세 평균 정도였고, 키는 7~8세 수준이었다. 늑골이 부러져 전치 4주 진단을 받아 당장 입원·치료를 해야 했지만 아이는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 늦게야 자신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준 경찰관 아저씨에게 입을 열었다. “배가 고파 2층 세탁실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도망쳤어요. 집에는 연락하지 마세요.”

 아이의 이름은 A. 실제 나이는 왜소한 체격과 달리 초등학교 5학년인 11세였다.

 수퍼마켓 인근 빌라 2층에서 아빠(32)와 아빠의 동거녀(35)뿐 아니라 동거녀의 친구(36·여)와 하얀색 강아지(몰티즈)도 함께 살았다.

 아빠는 A가 젖먹이일 때 친엄마와 이혼했다. 그리고 6년 전 아빠는 동거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동거녀의 친구도 들어왔다. A의 아빠는 특별한 직업 없이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생활비는 동거녀가 벌었다.

 하지만 A의 끼니를 챙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지면 오히려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며 회초리를 휘둘렀다. 일주일 넘게 굶은 적도 있다고 한다.

 아빠는 툭하면 A를 때렸다. “보기 싫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손찌검을 하고 옷을 걸어 두는 행거에 달린 쇠로 된 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동거녀와 친구도 폭력에 가담했다고 한다. 이들은 A가 “학교에 가기 싫어 한다”며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만 학교에 보내고 이후엔 집에 있도록 했다. 2년 전 인천으로 이사한 뒤 A는 한 번도 집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들도 A의 존재를 몰랐다.

 “아빠가 문을 잠그진 않았는데 어쩐지 밖으로 나가면 혼날 것 같았어요. 매일 수돗물만 마시니까 배가 너무 고파 빵을 훔치려고 몰래 나왔어요.” 빵을 훔치러 나온 이날이 A에게는 첫 외출이었던 셈이다.

 굶주린 A의 처지와 달리 동거녀와 친구가 키우던 애견은 상팔자였다. 경찰에 따르면 끼니와 간식을 챙겨 주고 온몸에 빗질도 해 줬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르고 털에 윤기가 흘렀다. A가 달아난 사실을 알아챈 아빠와 동거녀 등이 경찰을 피해 도주할 때도 강아지가 동행했다. 이들은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강아지는 잘 있느냐”고 경찰에 확인했다고 한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20일 상습폭행·방임 등 아동 학대 혐의로 A의 아빠와 동거녀, 친구 등 3명을 구속했다. 김상식 연수경찰서 여성청소년 과장은 “‘아빠와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알리자 A가 경찰관에게 ‘감사하다’고 했다”며 “입원한 아이보다 강아지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을 보고 경찰서 직원들이 하나같이 화를 냈다”고 전했다. 입원 중인 A는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이다. 경찰은 A의 치료가 끝나면 아동보호기관으로 인계할 방침이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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