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수험생 쥐고 흔드는 ‘예상 등급 컷’… 언제까지 입시업체에 떠넘길 건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지난달 12일 수능을 치른 고3 최모(18)군과 부모님은 시험을 마치고도 숨 돌릴 틈 없었답니다. 수능 당일 가채점을 마친 뒤부터 14일 수시 논술에 응시하기 전까지 각종 입시 사이트를 수백 번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수험생 자녀를 둔 독자라면 금방 눈치챘을 듯합니다. 맞습니다. 입시업체들이 내놓는 ‘예상 등급 컷(구분점수)’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험생이 선호하는 서울 소재 대학 대다수는 수시에 ‘4과목 등급합 6 이내’ 같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걸죠. 이 기준을 못 넘기면 논술·면접을 잘 쳐도 합격할 수 없으니 수험생은 가채점 결과와 예상 등급 컷을 비교해 대학별 고사를 칠지 말지 정합니다. 수시 대학별 고사는 대개 수능 성적 공식 발표(올해는 12월 2일)보다 앞서 실시되니 학생·교사 모두 민간업체의 예상 등급 컷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업체들의 예상이 서로 다른 데다 시시각각 변한다는 겁니다. 최군은 가채점 결과 영어 영역이 94점(원점수)이었습니다. 수능일 저녁 업체 10여 곳이 내놓은 영어 1등급 컷은 92점부터 97점까지 제각각이었죠. 13일 오후에야 93~94점으로 차이가 좁아졌고, 그제야 최군은 다음 날 모 대학 논술에 응시키로 했습니다. 최군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대입을 이런 식으로 급하게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숨 쉬더군요.

  올해는 업체 간의 과열 경쟁 탓에 한층 혼란스러웠죠. 몇몇 업체가 수능 당일 매 교시 예상 컷을 밝혔는데요. 수험생은 문제 풀고 있는 시간에 소속 강사들의 ‘감(感)’으로 추정한 점수를 공개한 거죠. 이 탓에 한때 ‘수학B, 영어 1등급 컷 100점’ 같은 오보도 돌았고요.

 혼란이 매년 되풀이되니 입시업계에서조차 “교육 당국에 맡기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수능을 채점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응시자 5~10%를 미리 채점하면 훨씬 정확한 등급 컷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평가원은 2003년, 2004학년도 수능에선 가채점한 결과를 미리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부·평가원은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샘플을 늘리고 첨단 기법을 동원해도 추정치와 최종 결과는 어느 정도 차이 나게 된다. 정부기관이 100% 정확하지 않은 수치를 내놓긴 어렵다”고 말했죠. 평가원도 내부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지만 반대가 훨씬 우세했다고 합니다. ‘고생만 하고 욕만 먹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죠.

 교사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신동원 휘문고 교감은 “ 계속 업체에만 맡긴다면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학부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교육부·평가원의 고민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공교육이 사교육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정부와 공교육 단체, 교사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요.

천인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