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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과 국회의장, 지금이 다툴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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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의화 국회의장이 어제 경제 관련 법안 직권상정 요청을 거부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법안 처리를 요구한 직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도 연일 국회 비난을 이어 갔다. 국회의장과 대통령의 전례 없는 정면충돌은 이제 탈출구를 찾기 어렵게 됐다. 동시에 청와대가 추진하는 기업활력제고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5법 등도 길을 잃었다.

 식물 국회로 불리는 19대 국회 중에서도 현재의 입법 기능 마비 사태는 야당에 1차적 책임이 있다. 야당은 법안 심의 자체를 거부하며 5개 상임위를 보이콧하고 있다. 가뜩이나 힘든 한국 경제 앞엔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 그 이듬해 지방선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여서 개혁의 골든 타임이라지만 변변한 개혁 입법 하나 만든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법안 심의까지 거부하니 청와대는 절박감이 생길 만하다.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해도 청와대가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다. 무엇보다 3권 분립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국회는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방망이를 두들기는 하부기관이 아니다. 또 국회법상 쟁점 법안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대상도 아니다.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의 ‘긴급 재정·경제명령’ 검토설까지 나돈다. 야당 내분에 따른 국회 기능 부진이 빌미라는데 이것도 초법적 발상이다.

 유승민 의원이 여당 원내대표에서 찍혀 나간 뒤 국정 주도권은 뚜렷하게 청와대로 옮겨 갔다. 그러니 정무수석은 여당은 물론 야당과의 대화 창구 역할에도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청와대는 그런 절차를 생략하거나 무시한 채 입법 수장을 압박하고, 압박 사실을 스스로 알려 국회의장의 반발을 샀다.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수출경쟁력은 떨어졌는데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성장세 둔화란 지뢰밭을 건너가야 한다. 단기 부양이 아니라 구조개혁이 절실한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다투는 건 모범 답안이 아니다. 힘을 합쳐 돌파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