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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하나 더하니, 강해진 전자랜드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와 전주 KCC의 경기가 열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관중들은 일제히 '포웰'의 이름을 연호했다.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포웰은 "이 곳이 내 집(This is my home)"이라며 화답했다. 9개월여 만에 전자랜드 유니폼을 다시 입은 외국인 포워드 리카르도 포웰(32·미국·1m96cm). 이날 경기장엔 그를 보기 위해 올 시즌 프로농구 최다 관중(7168명)이 몰려들었다.

전자랜드는 16일 현재 프로농구 10개 팀 가운데 8위(11승19패)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포웰이 복귀한 뒤 '포웰 효과' 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전자랜드는 지난 11일 KCC와 1대1 트레이드를 했다. 허버트 힐(31)을 내주고 포웰을 데려온 뒤 2연승했다. 잘 풀리지 않던 공격은 화끈해졌고, 실수는 줄어들었다. 포웰은 흥행에도 촉매제 역할을 했다. 김성헌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13일 경기 예매분만 3000여장 팔렸다. 평소(700여장 안팎)의 4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자랜드 주전 빅맨 정효근(22·2m1cm)은 "집 나갔던 소가 다시 돌아온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포웰은 2008~09 시즌과 2012~13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전자랜드에서 뛰었다. 단순히 외국인 선수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두 시즌(2013~14·2014~15) 연속 팀 주장까지 맡아 헌신했다. 변변한 스타급 선수가 없었던 전자랜드에게 포웰의 존재는 단비 같았다. 포웰이 몸담았던 시즌에 전자랜드는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포웰에게도 전자랜드는 고향 같은 팀이다. 대학 졸업 후 미국프로농구(NBA)에 수차례 도전장을 던졌지만 받아주는 팀이 없어 호주·독일·이란 등 해외 리그를 전전했던 그를 전자랜드는 포근하게 감싸안았다. 15일 기자와 만난 포웰은 "내 프로 인생의 절반을 전자랜드와 함께 했다.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 누구든 눈빛만 봐도 통한다. 당연히 내겐 집과 같은 팀"이라고 했다. 이날 그는 집을 뜻하는 'home' 'house' 라는 단어를 수차례나 들먹였다.

포웰은 지난 3월 말 어쩔 수 없이 전자랜드를 떠나야 했다. 한 팀에서 연속 3년까지만 계약할 수 있다는 외국인 선수 계약 조항 탓이었다.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 참가를 통해 다시 전자랜드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유도훈(48) 감독은 높이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포웰 대신 키 1m98cm의 안드레 스미스(30)를 선택했다. 포웰은 KCC의 지명을 받았다. KCC 유니폼을 입은 포웰은 평균 14.2점을 기록했지만 국내 선수들과 호흡이 맞지않아 고전했다. 그는 "버스 뒷좌석에 탄 느낌이었다"고 했다.

전자랜드는 11월에만 1승9패에 그쳤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던 유 감독은 옛 제자를 불러냈다. 유 감독은 "어려울 때 구심점 역할을 할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지난 11일 복귀한 포웰을 만난 자리에서 "팀이 어려운 시기에 리더십을 발휘해달라"며 플레잉코치 역할을 맡겼다.

포웰은 복귀하자마자 선수들을 불러놓고 "리스타트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동료들은 '캡틴' 'CP(캡틴 포웰)'라고 부르며 힘을 실어줬다. 슈터 정영삼(31)은 "그 말 한마디로 포웰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프로에 입문해 포웰에게 틈틈이 슛 기술을 배웠던 정효근은 다시 포웰의 제자가 됐다.

포웰은 경기 중에 선수들의 투혼을 일깨우는 역할도 맡는다. 신인 한희원(22)은 "자유투를 놓쳐 실망하고 있는데 포웰이 우리말로 '루키, 침착해' 라며 힘을 불어넣어줬다"고 설명했다. 포웰은 "전자랜드는 내 친정이나 다름없다. 전자랜드 동료들은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전자랜드 선수들은 포웰의 합류를 기적같은 선물로 여기고 있다. 전자랜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또 하나의 기적을 꿈꾼다. 전자랜드는 24일 인천 홈코트에서 6위인 원주 동부(15승14패)와 맞붙는다. 동부와 전자랜드의 승차는 4.5게임 차. 유 감독은 "지더라도 근성있는 전자랜드만의 팀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포웰은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1차 목표"라고 했다.

인천=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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