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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7년 만의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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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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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국제경제팀장

홍콩에 본부를 둔 A금융회사는 최근 보유했던 아시아 기업 주식을 모두 팔았다. 회사 관계자는 “연말에 직원들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주식을 처분했다”고 말을 흐렸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내린 결단이었다. 이 회사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Fed의 금리 인상이 글로벌 경제에 충격파를 던질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 아니라지만 방심은 금물
‘대분화(Great Divergence)’ 시대, 눈 부릅뜨고 대비를

 세계가 숨죽이고 있다. 먼 하늘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먹구름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과 귀를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 유가는 자유 낙하 중이다. 신흥국에서는 자본 유출이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를 비롯한 주요 국가의 주식시장도 힘을 잃고 있다.

 이런 출렁임, 분명 ‘위기의 징후’다. 특히 앞날이 더 뿌연 건 세계 경제의 두 축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가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항공모함은 서서히 풀린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방향을 틀고 있다. 다른 축인 일본·유럽·중국 선단은 정반대다. 엔진을 가속시켜 경기 부양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3국 선단은 양적완화를 지속하거나 더 확대하는 중이다. 과거 미국이 긴축 페달을 밟을 때는 세계 경제도 경기 과열 움직임이 뚜렷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만 독자 행보다. ‘대(大)분화(great divergence)’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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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두 축이 각기 다른 길을 가는 건 새로운 환경이다. 그 길은 각각 어디로 이어질까. 신흥국은 둘 사이에 끼여 길을 잃지 않을까.

 어려운 문제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답과 교훈을 찾기 위해 역사를 돌이켜본다. 1994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을 때가 지금과 비슷했다. 80년대 후반 대부조합 위기가 미국을 강타했다. 90년대 초까지 900여 개의 대부조합이 문을 닫았다. Fed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3%까지 내렸다. 당시로는 Fed 역사상 최저 금리였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는 지금처럼 제로가 됐다.

 군불이 효과를 내면서 미국 경제는 90년대 초에 다시 회복세를 탔다.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이끄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94년부터 기준금리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3%포인트를 올렸다. 위기 때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에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를 넘지 않았다. Fed의 목적 중 하나는 물가 안정이다. 물가가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Fed는 금리를 끌어올렸다. 그린스펀은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Fed의 과감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엉뚱한 곳에서 재앙이 됐다. 신흥국에서 급작스럽게 자본 유출이 시작되자 멕시코가 쓰러졌다. 위기 바이러스는 강력했다. 아르헨티나·태국·필리핀을 거쳐 97년 한국을 덮쳤다. 이게 우리에겐 치욕으로 남아 있는 ‘외환위기’다.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돈이 더 풀린 상태다. Fed가 기준금리를 제로 상태로 떨어뜨린 게 2008년 12월이다. Fed는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게 되자 시중 국채와 부동산담보채권 등을 사주는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이렇게 7년간 전 세계에 풀린 돈이 4조 달러다. 이 돈이 다시 미국으로 급격히 돌아가면 신흥국이 받을 충격은 94년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게다.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 3분기에 신흥국에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주식·채권 등에 투자한 자금)이 338억 달러(약 40조원)나 순유출됐다. 물론 한국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곳곳에서 “한국은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튼튼하다”고 한다. 실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685억 달러(11월 말 기준)에 달한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30% 초반에 불과하다. 올 10월까지 경상수지도 44개월째 흑자 행진이다. 터키·아르헨티나·말레이시아 같은 신흥국과는 차원이 다른 체력을 갖췄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기업이 시름시름 힘을 잃고 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총 매출은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상품 수출은 2년 연속 줄어들 전망이다. 가계 빚은 1200조원이 넘었다. 시한폭탄의 뇌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노동개혁 5법,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여전히 깔아뭉개고 있다. 경제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만기 전역 날짜가 지났는데 전역증이 안 나온다. 제대는 시켜줄 것 같은데…”라며 마음이 콩밭(총선)에 가 있다는 걸 대놓고 드러냈다.

 뭔가 찜찜하다. Fed가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지금은 아주 예외적인 시기다. 미국 경기는 지난 7년간 서서히 살아나 이미 확장기의 8부 능선을 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금리 인상을 하다 멈춰야 할 때에 금리 인상 버튼을 누르려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예고된 위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가 널리 퍼진 건 아닌가. 과도한 불안은 금물이지만 지나친 자만도 문제다. Fed의 7년 만의 외출은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따뜻한 봄바람을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바람을 맞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경계의 끈을 놓는 순간 ‘예고된 위기’는 ‘뜻밖의 위기’로 돌변한다. 지금은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글=김종윤 국제경제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