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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보리 볶은 싸구려 포터 흑맥주…어떻게 산업혁명을 발효시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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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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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토머스 J 미사 지음
소하영 옮김, 글램북스
528쪽, 2만7000원

산업혁명기 영국을 대표하는 생산품이라면 흔히 석탄, 철, 면직물 등을 떠올린다. 이 책은 여기에 흑맥주를 더한다. ‘포터’라 불린 이 흑맥주는 최고급 맥아를 발효시킨 전통적인 에일 맥주와 달리 싼 값의 보리를 로스팅해 대량생산의 길을 걸었다. 포터 흑맥주는 삽시간에 시장을 지배했다. 그 결과 양조업자의 수는 줄었지만 자본규모는 놀랍게 커졌다.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의 도입 역시 발빨랐다. 런던의 양조업자들은 철강산업에 와트 엔진이 도입된 지 불과 2년 만에 이를 맥아 처리과정에 설치했다. 와트 엔진 하나는 기존에 말 24마리가 하던 일을 대체하는 효과를 냈다. 과학기술사 전문가이자 미국 미네소타 대학 교수인 저자는 “포터 흑맥주 양조업의 전례없는 규모, 시장점유, 막대한 자본 뿐 아니라 비용 절감 목적의 기술 혁신은 모두 산업적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 이후 500여 년에 걸쳐 다양한 기술의 발전사, 나아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서술한다. 이를 위해 궁정·상업·산업·제국주의·모더니즘·세계대전·글로벌 문화 등의 키워드로 시대를 구분한다. 시대별로 그 특징을 폭넓게 개괄하기보다는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그 특징을 짚어간다. 이런 점에서 일종의 미시사적 접근이다. 읽는 재미도 여기에서 나온다. 르네상스, 즉 궁정시대는 여러 궁정 세력의 후원을 받은 다빈치의 연구에, 상업시대는 군함 위주의 스페인과 달리 청어 잡이와 가공에 최적화된 선박 설계부터 도입했던 네덜란드에 초점 맞춘다. 모더니즘은 아예 미래파, 데 스틸, 바우하우스 같은 예술운동의 산업적 파장 위주로 소개한다. 세계대전 시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생산을 위해 거대한 공단까지 지은 대목을 강조한다.

 저자는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섣불리 결론내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후반부로 갈수록, 즉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지금 시대에 이를수록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려가 짙어진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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