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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傳(끝)]'제2의 장성택'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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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12일 국가안전보위부원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 특별군사재판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장성택은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끌려나갈 때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다. [사진 노동신문]

12월 12일은 장성택이 처형된 날이다. 2년 전 장성택은 죽음을 앞두고 살려고 발버둥쳤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면 일부를 제외하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장성택은 자신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더 매달렸다. 12월 12일 군사법정에게 사형 판결문을 읽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에게 “원수님(김정은)을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버스가 이미 지나간 뒤였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만나 줄 가능성은 없었을 뿐더러 김정은의 주변 사람들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었다. 결국 장성택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성택이 처형된 소식을 듣고 김정은은 어땠을까?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이 처형된 날 김정은은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주변 사람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처형했지만 너무 서둘렀고 앞으로 자신을 지켜 줄 커다란 버팀목 하나를 자신 손으로 제거해 후회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자신을 둘러싼 권력 싸움에서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비롯한 기존 세력과 군부 원로그룹 등을 견제할 친인척 세력 가운데 한 사람을 제거한 것이다. 김경희(고모), 김여정(동생), 김정철(형) 등이 있지만 그래도 장성택이 필요했다. 장성택이 북한을 바꾸려는 욕심이 지나쳐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성택이 ‘장씨의 나라’를 만들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하지만 권력은 냉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다. 그 누구라도 도전할 가능성이 1%라도 보이면 제거해야 한다. 권력자 주변 사람들은 설령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권력자가 오해할 소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 뒤 5일 만에 김정일 2주기(12월 17일) 추모행사장에 모습을 보였다. 1년 가까이 끌어 온 장성택 사건을 처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보였다. 그 자리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장성택의 그림자는 북한에서 거의 없어졌다. 장성택 주변 사람들은 처형되거나 권력에서 물러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일정 기간 혁명화교육을 받고 말직으로 복귀한 사람도 있다. 복귀한 사람들은 북한의 외화벌이에 앞장섰던 사람들로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필요한 사람들이다.

북한은 내년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연일 ‘당 제7차 대회를 혁명의 전례없는 최전성기로 빛내이자’, ‘당 제7차 대회를 맞으며 혁명적인 사상공세의 포성을 더욱 높이 올리자’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제7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를 대대적으로 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그 동안 인사를 통해 보여준 모습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실리’ 또는 ‘실력’이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과정보다 결과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관료들은 몸을 살리려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이럴 때 장성택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권력의 화신’이 아니라 ‘전략가’로서의 장성택이 필요한 것이다. 김정은 주변 사람으로 장기적인 비전이 있고 개혁 성향이 강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김정은이 이런 사람을 키우지 못하면 북한은 계속 제자리를 걸음을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북한은 작지만 변화를 시작했다. 장성택이 추진했던 장마당은 경제의 주역이 됐고, 중앙 특구 5곳과 경제개발구 19곳은 더디지만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변화에 속도를 올릴 전략가가 필요하다. 당 제7차 대회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은 갔지만 ‘장성택 키즈’들이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장성택傳]을 사랑해 주신 네티즌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김정은 탐험]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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