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역구 챙기자” 6006억 막판에 끼워넣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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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국회 ?새벽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서청원 최고위원,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왼쪽부터)가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내년 총선을 앞두고 3일 0시48분에 통과된 2016년도 예산안(386조3997억원)은 한마디로 ‘선거용 예산’이다. 중앙일보의 예산안 내역 분석 결과 국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의 막판 심사 과정에서 늘어난 지역용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만 6006억원이었다.

예산소위서 새로 넣은 사업 55건
연구용역비 등 10억원 이하 많아
“이렇게 시작해서 대규모로 키워”
최경환·이정현·노영민 지역 증액

“심장병 환자에게 무좀 치료 격
지역엔 치적이지만 국가엔 죄”

 증액 심사를 통해 정부 원안에서 늘어난 국토교통부 예산은 총 6048억원(증액+신규 편성)이다. 이 중 청사 이전 지원(14억원) 등 국토부 일반사업 예산은 42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6006억원)는 대부분 지역 SOC 예산이었다. SOC 예산은 도로나 철도·하천 등 눈에 확 들어오는 기반사업으로, 지역구 의원들이 의정활동 홍보자료에 넣어 치적으로 내세운다. 표의 논리에 평년보다 예산안은 더 얼룩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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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안에 없던 SOC 예산만 985억원=정부 원안에는 없었는데 예산소위 단계에서 새롭게 끼워넣은 사업이 55건, 액수로는 985억원에 달했다. ▶수도권 서남부 지역 광역교통대책 평가 연구용역비(20억원) ▶대전 무수동~구완동 도로 건설(9억원) 등이다. 10억원 안팎의 소규모 예산이 많다. 문제는 이런 소액 예산이 몇 년 뒤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한 예산분석관은 “맨 처음 연구용역비로 10억원을 넣었다가 다음해에는 설계비, 그 다음해에는 공사비 등 명목으로 몇천억, 몇조원으로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 편성 내역에는 여야 실세들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평택~오산 국도 건설 예산(2억원)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원유철(평택갑) 원내대표와 국회 예결특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오산) 의원의 두 지역구를 잇는 도로 예산이다. ‘시집 강매 의혹’이 제기돼 당 감사를 받고 있는 새정치연합 노영민(청주 흥덕을) 의원 지역구에 들어가는 청주국제공항 평행유도로 건설 예산은 188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실세 지역구 예산서 ‘증액’=국회 심의 단계의 SOC 예산 증액 규모는 5023억원에 이른다. 실세 의원 지역구의 증액이 두드러진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새누리당 최경환(경산-청도) 의원 지역구가 포함된 대구선 복선전철사업은 정부안에 2321억원이 잡혀 있었는데 막판에 70억원이 늘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목포) 의원 지역구를 지나는 목포~광주 호남고속철도건설 예산은 정부안에서 250억원이 늘어나 최종 800억원이 배정됐다.

 SOC 예산은 물론 일반사업 예산까지 챙긴 것을 더하면 실세 증액 규모는 훨씬 커진다. ‘호남 예산 지킴이’를 자처하는 새누리당 이정현(순천-곡성) 의원은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야생동식물보호·관리 217억원(2억원 증액) ▶순천대 보수 26억원(10억원 증액) 등 100억여원을 증액시켰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 부산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 예산도 449억원에서 150억원이 순증했다.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문 대표와 전혀 무관한 예산으로, 야당 예결위 간사는 오히려 감액을 요청했다”며 “증액은 새누리당과 부산시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텃밭 예산’=새누리당 기반이 강한 대구·경북(TK)과 새정치연합의 호남 지역 예산도 각각 5600억원, 1200억원 늘었다. TK 예산 중 울산~포항 복선전철 사업비는 정부안엔 3639억원이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300억원 늘었다. 영천(경북)~언양(울산) 고속도로 건설사업비도 정부안(733억)보다 175억원이 많아졌다.

 호남에서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트 및 운영비 예산이 80억원 증액됐다.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예산도 20억원이 새롭게 잡혔다.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국가 대계 대신 당장 표에 도움되는 도로·철도 예산에 목을 매는 행태는 심장병 환자가 심장 치료는 안 하고 무좀 치료하는 데 돈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지역구에 내려가선 치적이라고 자랑하겠지만 국가에는 죄를 짓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형구·강태화·정종문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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