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비 삭감한다더니 거꾸로 올리려 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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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봉급에 해당하는 세비(歲費)를 올리려다 반발 여론이 빗발치자 철회했다. 국회 예결위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은 어제 세비의 기본급에 해당되는 일반수당의 3% 인상을 반영한 내년도 세비 인상분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운영위는 그제 국회 사무처에 대한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국회의원의 세비를 3%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하루 만에 세비 동결을 선언하며 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세비 인상 철회는 당연한 조치다.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일종의 입법 활동비다. 그러나 국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게을리하고 있어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당장 한시가 급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노동개혁 법안 등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들이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몇 년째 국회에 계류된 채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올 정도로 국회의 업무 태만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봉급을 올리겠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으니 도대체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대통령과 장관의 월급도 동결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조금이라도 보탰으면 좋겠다”(새정치연합 김성주 의원)는 발언이다. 세비 인상에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을 엉뚱하게 정부와 청와대로 돌리려는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세비 인상 시도는 국민과의 약속을 위반한 비양심적 행위다. 여야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정치개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세비 30% 삭감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결국 지켜지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겉으론 세비 삭감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되레 세비 인상안을 처리하는 이중적 행태에 넌덜머리가 난다. 국회는 세비 동결이 아니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여론을 가볍게 들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