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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달러 약세행진 환율전쟁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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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환율까지 널뛰기를 하면서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북핵 위기로 지난 4월초 달러당 1,260원선까지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더니만, 최근에는 1,200원선이 맥없이 무너져 1,180~1,190원선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려 울상이다.

환율 불안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중심 통화인 달러화가 유로화와 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 기조를 이어지자 유럽연합(EU)과 일본.중국 등은 자기 나라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 '환율 전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는 지난해 유로화에 대해 약 15% 떨어진 데 이어 올 들어서도 10% 정도 추가 하락했다. 달러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지난해 이후 약 10% 떨어졌다.

달러, 왜 약세인가=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체력이 허약해진 가운데 부시 행정부가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하고 '약한 달러'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존 스노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5월 "약한 달러가 미국 기업의 수출에 도움이 된다"며 "달러 환율의 조정폭은 적당하다"고 말했다.

약한 달러는 부시 대통령이 내년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선택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의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다시 악화일로인 점도 달러화의 힘을 빼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4천8백44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5천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의 금리가 유럽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 국제 자본이 미국내 금융자산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점도 달러 약세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환율전쟁 벌어질까=한 나라가 통화가치를 일방적으로 끌어내려 무역 상대국에 고통을 강요하면 상대국도 참지 못하고 맞불 정책으로 나올 수 있는 데 이것이 환율전쟁이다.

하지만 환율전쟁은 결국 각국의 통화를 평가절하의 악순환에 빠뜨려 국제교역을 크게 위축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승자 없이 패자만 남는 전쟁인 셈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디플레이션 고통을 겪으면서 환율 방어에 안간 힘을 쏟고 있다.내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수출마저 막히면 진퇴양난에 처해 자칫 '잃어버린 20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유로화 가치의 상승이 "아직은 참을 만하다"며 견디는 모습이다. 수출이 걱정이지만 통화가치가 어느 정도 올라가야 걸음마 단계인 유로화를 국제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각국은 최근 "정도가 심하면 개입하겠다"며 서서히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또하나 주목거리는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8.28달러선에 묶어두는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다.그 결과 달러가치 하락에 무임승차해 수출 경쟁력이 부쩍 높아지는 상황이다.

미국은 스노우 재무장관이 직접 나서 중국 정부에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넣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현행 환율제도를 유지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환율전쟁이 전면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부분적인 전투가 확대돼 전면 환율전쟁으로 갈지는 싸움을 건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전쟁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 투자자본의 이탈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국인 투자 자금이 급속히 이탈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 달러화 가치가 1백~2백%씩 폭락할 때는 일본과 독일 경제가 미국 경제의 대안으로 떠오를 만큼 튼튼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과 유럽 경제는 미국 이상으로 어렵다. 달러화만 홀로 폭락하기는 힘들다."(금융연구원 박재하 연구위원)

달러 약세의 끝은?=삼성경제연구소는 달러화 가치가 내년말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금보다 10% 정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달러 약세에 따라 유로화는 현재 유로당 1.15달러선에서 1.25달러선으로, 엔화는 현재 달러당 117엔선에서 110엔선으로 각각 통화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도 달러 가치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완만한 하락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광기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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