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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제개혁 1년 시장경제 실험중] '일한 만큼 번다'… 부업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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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해 북한에서 단행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임금과 물가의 대폭 인상, 경제관리의 분권화 등 북한 경제에 큰 변화를 초래했고, 급기야 지난 3월에는 북한 당국이 시장 기능을 공식 인정하는 등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북한의 경제개혁이라 불리는 7.1 조치 1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와 문제점, 경제 전반과 주민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 등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지난해 7.1 조치 이후 중구역을 제외하고 평양의 전 구역에 현대적인 시장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평양 시내에 대규모 상점을 개설키로 지난 4월 북한 당국과 계약을 한 중국 조선족 기업인 A씨의 말이다. 그동안 평양 창광노래방 등 일부 서비스업종에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계열의 인사나 기업이 합작 형태로 투자한 경우는 있었으나 북한 당국이 외국인에게 평양 시내 상점 개설을 승인한 것은 처음이다.

이같은 정책전환은 지난 10일에 발표된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도 뒷받침된다. 이 논평은 처음으로 '경제개혁'이란 단어를 공식 사용하며 "시장운영이 처음인 만큼 다른 나라로부터 전문가 양성, 경험 도입을 비롯한 협조를 가능한 한 받으려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외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는 1년 전 북한 당국이 '개혁' 대신 '개선'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시장기능 확대'=북한은 지난해 7.1 조치를 발표할 때만 해도 농민시장의 기능을 국영상점망으로 흡수하면서 이를 통제하려는 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 사용료'를 판매량에 따라 정확히 받는 등 시장 기능을 적극 활용해 재정수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개편했다. 이는 1990년대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주민들이 호구책(糊口策)으로 너도나도 장사에 나서 농민시장이 활성화된 현실을 늦게나마 북한 당국이 수용한 것이다.

지난 17일 도쿄에서 만난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 강일천(姜日天) 연구기획부장은 "북한은 현재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들을 만나고 돌아온 미국 거주 S교수는 지난 24일 "과거와 달리 경제학 교수들이 '우리도 상품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며 "다만 차이점은 장사를 해 돈을 벌되 개인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집단주의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7.1 조치 이후 북한 당국의 '시장' 인정은 아직까지 유통부문에 한정된 것으로 시장 기능의 전면 도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사가와 평화재단 이찬우 주임연구원은 "지난해 7.1 조치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북한의 경제개혁은 83년 중국이 공산당 결정으로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상품경제의 병존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린 시기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다만 북한의 경우 시장은 아직까지 소비품 시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장기능의 전면 인정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돈을 벌자"=7.1 조치 이후 북한주민들은 부업을 해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8월 나온 무산 출신의 한 탈북자는 "지난해 군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주민들에게 7.1조치를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두몫, 세몫 해야 한다고 교양했는데, 직장일 외에 빗자루를 만들든 옷을 만들든 따로 부업을 해서 생산량을 늘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한 대북소식통도 "일반주민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관료들까지 사석에서 '장사를 잘해 인민과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7.1 조치 이후 개인별.기업소별 성과급제가 도입되면서 주민들이 기본생활비(임금) 외에 '일한 만큼, 번 만큼' 분배받는 성과급에 갖는 관심도 높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20만원을 분배받았다는 자강도 희천시의 누에고치 재배 농민, 부업으로 남편의 두배가 넘는 5천원을 번 통일거리 아파트의 가정주부 등 여러 사례들이 알려져 있다. '7.1 조치'는 북한 주민들의 노동 의욕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전력과 자재의 만성적 부족으로 계속 공장가동률이 저하되고, 공급부족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외부지원 없이 이같은 내용의 경제개혁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유동적 상황이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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