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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의 부동산 맥짚기] 일률적 대출 규제가 위험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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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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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주택시장에 예상했던 악재가 나타났다. 은행이 아파트 중도금 대출을 줄이는 분위기다.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해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대출금이 너무 많이 풀려 리스크 관리를 해야겠다는 게 은행권의 얘기다. 은행도 중도금 대출장사가 아니면 먹고 살기가 어려운 텐데 느닷없이 돈 줄을 조이려는 이유가 뭘까. 더욱이 중도금 집단대출은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100% 보증을 해주고 있어 떼일 염려가 없는 효자상품 아닌가.

 공급과잉을 우려한 정부가 금융권을 통해 주택물량 조절에 나선 것이 분명하다. 중도금 대출이 안 되면 분양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출억제 정책은 공급과 수요를 한꺼번에 시들게 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대출억제 얘기가 나오자 주택시장은 당장 경색되는 모양새다.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의 일부 분양현장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는가 하면 아예 분양시기를 내년으로 미루는 사례도 나온다. 갖고 있는 물량을 다 털어내려고 연말 대목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주택업계로서는 금융권의 한랭기류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 자승자박(自繩自縛) 아니겠나.지난해부터 공급과잉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었는데도 업계는 오히려 더 많은 아파트를 출하했다. 하기야 업체한데 아파트 분양을 좀 줄여주기를 바라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물건을 팔지 말라는 얘기나 똑같다.

 공급조절은 업계 자율에 맡길 일이 아니었다. 정부가 인·허가 통제나 대출 조절을 통해 관리했어야 했다. 진작부터 적당히 수급조절에 나섰더라면 이런 식의 경착륙을 시도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일률적인 대출규제 카드를 꺼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경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시점인데 여기에 수요억제 정책을 내놓으면 시장은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 방안과 맞물리면 그 파장은 더욱 강해질지 모른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일부 과열지역만 손을 대고 나머지는 시장기능에 맡겨두는 게 나을 듯싶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칼질을 하게 되면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차라리 내년부터는 전체 대출규모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공급이 이뤄지게 하면 어떨까. 정부 계획에 맞춰 집단대출 한도를 정해 놓으면 공급 과잉문제는 사라지지 않겠냐는 소리다. 대출금에 대한 공기업의 100% 보증제도를 없애도 은행 스스로가 심사를 강화해 무분별한 대출 관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앞으로 벌어질 공급과잉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 야 한다. 입주물량 해소 대책에서부터 수요 창출 등 여러 방면을 점검하는 일이 시급하다.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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