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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상 된 대종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상을 수상자분께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남녀 주연·조연상 등 대부분 불참
"꼭 전달하겠습니다" 민망한 풍경
주최측, 불참자 상 안 주려하다 파행

 20일 오후 7시2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다.

 황정민(남우주연상), 전지현(여우주연상), 오달수(남우조연상), 김해숙(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수상자 대부분이 불참하면서 대리 수상자들이 트로피를 챙겨가는 민망한 풍경이 이어졌다. 영화제 측은 대리 수상자를 주먹구구식으로 선정해 무대에 올렸다. 신인감독상의 경우 수상자인 ‘뷰티 인사이드’의 백감독이 불참하자 같은 부문 후보이자 수상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대리 수상자로 무대에 오르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회자인 배우 신현준도 불참자의 트로피를 대신 받느라 진땀을 흘렸다. 당초 배우 김혜자에게 수상 약속을 했다가 번복해 논란을 빚은 나눔화합상은 아예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운 권위와 감동은커녕 대리 수상과 미숙한 진행으로 보는 이들에게 민망함만을 안겨준 행사가 됐다. ‘국제시장’이 작품상·감독상 등 10개의 트로피를 쓸어가면서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때의 몰아주기 논란도 재연됐다.

 이 같은 파행은 남녀 주연상 후보 9명 전원이 불참을 통보하면서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후보들은 촬영, 해외체류 등 개인 일정을 불참 사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암묵적인 보이콧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갈등은 영화제 측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영화제 측은 지난달 시상식에 안 오는 배우들에겐 상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결국 ‘참가상’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고, 배우 인기투표를 유료로 진행하면서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제작자는 “대종상은 해마다 공정성·몰아주기 논란, 내부 비리 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며 “영화제의 존폐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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