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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김인식 감독이 전한 '도쿄대첩' 뒷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20일 일본 도쿄돔에서 만난 김인식(68) 감독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해물탕을 먹으러 갔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며 한·일전 승리 소감을 대신했다. 한국은 19일 열린 일본과의 프리미어12 4강전에서 일본 선발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에게 7회까지 끌려가다 0-3으로 뒤진 9회 초 4점을 내며 대역전승을 거뒀다. 2015년판 '도쿄대첩'이었다.

김 감독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3시간 동안 지고 있다가 5분 만에 역전을 시켰다. '국제 대회에서도 이런 경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대표팀은 오타니에게 6회까지 안타를 한 개도 치지 못하며 끌려갔다. 김 감독은 "오타니의 공은 공략하기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오타니가 내려갔을 때 속이 시원했다"고 전했다.

"언제쯤 승리 예감이 들었냐"는 질문에는 "정근우의 2루타 때 해볼만하다고 느꼈고, 김현수가 볼넷으로 나가 무사 만루가 됐을 때 역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확신대로 김현수 다음에 나선 이대호의 2타점 적시타로 한국은 꿈 같은 승리를 거뒀다.
이에 앞서 9회 초 선두 타자부터 연속으로 대타를 내보낸 것이 큰 효과를 거뒀다. 9회 선두 타자 오재원이 좌전 안타를 터뜨렸고, 이어 손아섭이 중전 안타를 때리며 천금같은 무사 1·2루 기회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 "오재원은 발이 빠르고 대담하다. 그래서 이닝의 선두 타자로 나서면 좋을 것 같았다"며 "손아섭은 주자가 있을 때 진루타를 확실히 쳐줄 수 있는 타격 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날 구심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인색했다. 김 감독은 "바깥쪽 공이 계속 볼로 판정되자 롯데 팬들이 견제하는 투수를 향해 '마'라고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주심도 신경이 쓰이던 지 벤치 쪽을 자꾸 돌아봤다. 양의지에게 물어보니 '빠진 공도 몇개 있었지만 4회 이대은이 나카타 쇼(니혼햄)에게 내준 볼넷의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대은은 볼넷 후 흔들리며 선취점을 내줬고, 김재호의 실책이 나오면서 4회에만 3점을 내줬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지인들로 부터 50여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오랜 지기인 김성근(73) 한화 감독도 "벤치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김 감독은 적장으로 치열한 승부를 펼친 고쿠보 히로키(44) 일본 대표팀 감독에 대한 위로도 빼놓지 않았다. 김 감독은 "아직 경력이 짧은 고쿠보 감독이 좋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은 오후 12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자율 훈련을 진행했다. 김현수·민병헌·허경민(이상 두산)·나성범(NC)·황재균(롯데)·김광현(SK)이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었다. 일본을 넘은 한국은 21일 미국-멕시코전(20일 오후 7시) 승자와 결승전을 치른다.

도쿄=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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