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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잊어라, 그로저가 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독일산 폭격기' 그로저(31·2m)를 앞세워 비상하고 있다. 이제 레오(25·2m6㎝)는 잊어도 좋을 것 같다.

삼성화재는 18일 대전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면서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과 이번 시즌 개막전 패배를 설욕했다. 승리의 주역은 외국인 선수 그로저였다. 그로저는 한국에 온 뒤 가장 많은 48점을 올렸다. 지난해 '시몬스터(시몬+몬스터)' 열풍을 일으켰던 OK저축은행 시몬(28·2m6㎝·쿠바)과의 대결에서도 이겼다.

개막 후 삼성화재는 3연패에 빠졌다. 지난 시즌까지 활약했던 레오가 빠진 공백이 컸다. 당초 올시즌에도 삼성화재에서 뛰기로 했던 레오는 개인적인 이유를 대며 입국을 미뤘다. 임도헌(43) 삼성화재 감독은 고민 끝에 레오와의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대신 레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독일 국가대표 공격수 그로저를 뽑았다. 지난해 독일이 세계선수권 3위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로저는 2013~14시즌에는 소속팀 벨로고리(러시아)의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벨로고리의 재정 상태가 나빠진 틈을 타 삼성화재는 그로저를 손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그로저가 분명 세계적인 선수이긴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레프트 공격수로서 서브 리시브에 참여했던 레오와 달리 그로저의 포지션은 공격에만 전념하는 라이트였기 때문이다. 포지션이 다른데다 세터 유광우를 비롯해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보지 못한 것도 걱정이었다. 그로저는 국가대표로 CEV 챔피언컵에 출전하느라 OK저축은행과의 개막전(1-3 패)과 대한항공전(0-3 패)에 결장했다. 그로저가 합류해 치른 첫 경기(현대캐피탈전)에서도 삼성화재는 0-3으로 졌다.

하지만 그로저가 서서히 팀에 적응하면서 삼성화재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1라운드를 6위(2승4패)로 마친 삼성화재는 2라운드에서 4승1패를 기록하며 4위로 뛰어올랐다. 유광우는 "제대로 리시브가 되지 않은 공도 그로저가 잘 처리한다. 나쁜 공을 때리는 능력은 레오보다 낫다. 그가 왜 세계적인 선수인지 알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임 감독도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고 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로저의 주무기는 3m75㎝ 높이에서 내리꽂는 강서브다. 파워 서브에다 빠르게 휘는 구질로 리시버들을 괴롭히고 있다. 독일 대표팀에서 5연속 에이스를 기록한 바 있는 그로저는 18일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선 무려 9개의 서브득점을 올렸다. 국내 프로리그 사상 한 경기 최고 서브득점 기록이다. 세트당 평균 서브득점도 0.818개(1위)로 시몬(0.385개·2위)의 두 배가 넘는다. 득점(310점)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다.

관건은 체력이다. 유럽에서 활약할 때 그로저는 공격점유율 30% 정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공격의 절반 정도를 맡는다. 경기 일정도 유럽리그보다 빡빡하다. 강철 체력을 자랑했던 레오처럼 그로저가 시즌 막판까지 폭발력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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