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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광군제와 중국의 소비혁명

중앙일보

입력

중국에서 지난 11월 11일 열렸던 대광군제(大光棍節)행사가 화제다. 중국에서는 ‘싱글’ 즉 짝이 없는 ‘솔로’의 의미가 있는 숫자 1이 일 년 중 3번 겹치는 날을 ‘중(中)광군제’ 가장 많이 4번 겹치는 날을 ‘대(大)광군제’로 부른다. 20 여 년 전 중국의 기발한 대학생들이 서양의 밸런타인데이에 맞서 연인이 없는 솔로들을 위한 날로 ‘광군제’를 만들었다.

서양의 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의 날이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시킨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결혼을 주선한 성 밸런타인(Saint Valentine) 주교가 269년 2월14일 처형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순교일을 기념하여 매년 2월14일에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마윈(馬雲)회장은 2009년부터 11월11일(雙11)의 광군제를 기념하여 전자 상거래 온라인 쇼핑행사를 개최해 왔다. 금년 행사는 혁명이라고 할 만한 쇼핑 광풍을 불러왔다. 232개국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하루 동안 거래한 금액만 16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기록이다. 글로벌 시대에 맞추어 ‘하이타오족(海淘族)’으로 불리는 해외 직구족을 겨냥한 상품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전직 영어강사로 인터넷 기업을 성공시킨 마윈 회장은 007 시리즈의 주인공인 다니엘 크레이그를 초빙 깜작 쇼를 펼쳤다. 그리고 저장성 항저우 본사에서는 당일 매출액을 전광판으로 실시간 공개하면서 사람들을 열광시켜 쇼핑행사를 거대한 축제로 만들었다.

마윈 회장의 아이디어로 중국의 광군제는 일약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유럽 및 영연방 국가의 ‘박싱 데이(Boxing Day)’에 비견되는 세계 최대의 쇼핑행사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11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의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에 연중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루어지는데 이날에 처음으로 흑자 (black ink)를 기록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른다. 유럽 및 영연방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이 ‘박싱 데이’이다. ‘박싱’은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 상자를 의미하는데 ‘박싱 데이’는 크리스마스 재고를 소진하기위해 물건 값을 대폭 할인하여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와 ‘박싱 데이’는 오프라인 쇼핑이 중심인데 비해 광군제는 매장이 없는 외국 업체도 참여하는 전자상거래 전용 쇼핑행사다. 광군제 쇼핑은 세계적인 온라인 거래 추세에 힘입어 앞으로 쇼핑 규모의 증가는 몇 배로 늘어날지 예상을 불허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잘 맞는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튀는 발상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글로벌 직구전쟁의 새 지평을 보여준 중국 광군제”, “세계를 뒤흔든 무서운 모바일 쇼핑 혁명” 등의 타이틀로 중국의 광군제 쇼크를 전하고 있다. 중국 보다 훨씬 앞선 1990년대부터 전자상거래를 시작한 정보통신기술(ICT)의 선진국인 한국은 뭘 하고 있느냐는 산업계에 대한 질타가 숨겨져 있다.

업계에서는 마윈 회장의 아이디어뿐만이 아니고 중국 정부가 규제를 없애 주는 등 전자상거래의 성장을 정책적으로 도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광군제를 하루 앞 둔 11월 10일 마윈 회장에게 축전을 보낼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안과 개인정보 등 각종 규제가 너무 많아 중국과 같은 ‘광군제’는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글로벌 변화에 따라 자신을 개혁하면서 혁신과 창조를 이끌어 내는 마윈 같은 기업인과 함께 중국인의 폭발적인 소비 욕구가 광군제 소비 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한 때 전 세계 소비의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제는 중국이 그 역할을 이어받을 것 같다. 개혁 개방 이후 열심히 일만해 온 중국 사람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소비문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제 소비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되면 중국인의 소비는 급격히 늘어날 것 같다.

중국경제가 지금은 조정기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소비와 서비스 중심의 경제로 탈바꿈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 질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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