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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렌베이크는 유럽의 이슬람 수도 … 벨기에 “통제력 상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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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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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벨기에 경찰이 파리 테러 용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대규모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군경은 16일 160여 곳에 이어 17일 120여 곳을 급습해 수색했다. 벨기에 경찰이 16일 테러범들이 살던 수도 브뤼셀의 몰렌베이크에서 테러 용의자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다. [브뤼셀 신화=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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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 용의자를 쫓는 눈이 벨기에로 집중되고 있다. 벨기에 경찰은 테러 직후 몰렌베이크 구역에 대한 긴급 수색 작전으로 테러 관련자 7명을 체포했고, 16일(현지시간)에도 23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테러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범행 전부터 파리와 몰렌베이크를 오가며 무기를 밀매하고 차량을 빌리는 데 가담한 혐의다.

자국 내 테러용의자 왜 못 잡나
인구 1100만 중 50만 명이 무슬림
복지 소외당해 불만 커져 증오로
오랜 실업 청년들 외로운 늑대로
교통 요지 벨기에, 도주하기 쉬워
언어 3개, 6개 독립된 경찰 조직

 그런데도 테러 주범 8명 중 유일하게 도주한 살라 압데슬람(26)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프랑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압데슬람은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국적자로 테러 직후 공범의 도움을 받아 도주했다. 독일 경찰은 벨기에 국경 지역인 아헨에서 압데슬람의 범행과 연관된 2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을 체포했다고 독일 DPA가 17일 보도했다. 이들 3명은 16일 벨기에 경찰이 압데슬람의 은신처라는 제보를 받고 포위망을 펼친 몰렌베이크 지역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서 체포됐다. 앞서 압데슬람의 형 이브라힘(31)은 바타클랑 극장에서 자폭해 숨졌고, 동생 무함마드는 무기를 지원한 혐의로 벨기에에서 체포됐다가 혐의점을 찾지 못해 이틀 만에 풀려났다.

 바타클랑 극장에서 자폭 테러를 감행한 이스마일 오마르 모스테파이(29) 역시 수년 전 몰렌베이크를 방문한 뒤부터 급진주의자로 돌변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한다. 벨기에가 이번 파리 테러의 온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15일 프랑스 르 피가로는 특히 몰렌베이크에 대해 “극단주의 테러범들을 키우는 훈련소이자 은신처”라고 지적했다.

 파리 테러뿐 아니라 그간 유럽에서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중 상당수는 벨기에를 근거지로 삼았다. 올 8월 파리행 탈리스 고속열차 테러범과 지난해 5월 브뤼셀 유대인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한 테러범 역시 몰렌베이크에 거주하며 범행을 모의했다. 얀 얌본 벨기에 내무장관은 15일 벨기에 공영방송 VRT에 출연해 “우리는 현재 몰렌베이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라며 책임을 인정했다.

 벨기에는 전체 인구 1100만 명 중 50만 명 이상이 무슬림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무슬림의 불만은 쌓여 갔고, 이들은 현지에서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로 변해 갔다. 나라가 프랑스어권과 네덜란드어권, 독일어권으로 나뉘어 있고 경찰 행정조직이 분리돼 있는 것도 문제다.

 특히 벨기에가 유럽 각국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란 점도 사회적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난민들이 벨기에를 밀항 루트로 활용하면서 불법 난민·이민자가 몰려들었고 테러범들이 은밀하게 범행을 모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벨기에 내에서도 특히 몰렌베이크는 ‘지하디즘(이슬람 성전주의)의 온상’으로 꼽힌다. 거주 인구 10만 명 중 3만 명이 무슬림인 탓에 유럽 대륙에선 이슬람의 정치적 수도로 불린다. 벨기에 평균 실업률이 9%인 데 비해 몰렌베이크의 실업률은 30%에 달한다. 빌랄 벤야이크 브뤼셀 자유대학교 교수는 “초기엔 무슬림들이 중동에서의 억압을 피해 몰렌베이크로 몰려들었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이들은 유럽의 차별정책과 ‘무슬림 혐오’에 증오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알랭 그리나드 브뤼셀 대테러수사팀 선임요원은 1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벨기에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과정에서 지하디스트들의 유혹에 넘어간다”며 “이들 대부분은 시리아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 테러에 가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제급진주의연구센터(ICSR)에 따르면 벨기에의 무슬림 인구(64만 명) 1260명당 한 명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지하드에 참전하고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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