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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못 받는 정권심판론 … 여야 ‘상대평가 투표’될 전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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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호 8 면

내년 20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15일부터 재외 선거인 등록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선거 일정의 막이 올랐다. 각 정당도 저마다 총선에서 한국 사회에 던질 화두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이슈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섰다. 중앙SUNDAY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공동으로 여론조사(11월 4~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 유·무선 전화조사)를 실시해 20대 총선의 구도와 의제를 전망해봤다.


역대 선거를 분석해 보면 총선은 회귀 투표, 즉 과거를 평가하는 선거였다. 반면 대선은 미래를 준비하는 전망 투표적인 성격이 강했다.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내년 20대 총선에도 이 법칙이 적용될까.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내년 총선이 어떤 성격인지’에 대해 물었다. ‘현 정부의 국정을 견제하는 선거’라는 응답(35.4%)이 가장 많았고 ‘현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선거’(33.1%)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사실상 국정 안정과 국정 견제 여론이 거의 대등했다. 중앙 정치와 무관하게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는 의견(25.1%)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년 총선이 역대 선거의 흐름처럼 일방적인 회귀 투표, 즉 현 정부를 견제하거나 심판하는 선거로 진행될 가능성이 작다는 뜻이다.


 ‘국정안정론’을 택한 주요 응답층은 ▶충청·영남 지역 거주자 ▶50대와 60세 이상 ▶자영업과 전업주부였다. 이념적으론 보수층인 이들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안정 속에 변화를 꾀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국정견제론’은 ▶경기·인천과 호남 지역 거주자 ▶20~30대와 40대 ▶전문직과 화이트칼라(사무·관리직) 등이 주요 응답층으로 분류됐다. 이들 또한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핵심 지지층이었다. 지지층이 팽팽하게 갈라서 있기 때문에 내년 총선은 현 정부가 잘했나 못했나를 묻는 단순한 절대평가보다는 2012년 대선 때처럼 여야 간에 누가 낫나 식의 상대평가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야권의 주요 지지층을 이루는 화이트칼라와 학생 계층은 정치적 공방만 오고 가는 거듭된 정쟁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에 단순한 ‘정권심판론’만으론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당파 유권자들은 지역일꾼론 선호 흥미로운 사실은 정권안정론과 심판론의 틈을 비집고 ‘지역일꾼론’에 대한 선호가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주로 이념적으로 중도에 속하거나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 지역일꾼론을 선택했다.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이들의 표심(票心)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캐스팅보트(Casting Vote) 역할을 맡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국정 안정’ 응답자 중 대전·충청 거주자와 자영업자, ‘국정 견제’ 응답자 중 30대, 블루칼라(생산·기술·서비스직) 층도 지역일꾼론에 대해 평균 이상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국정 견제 또는 안정을 꾀하면서도 ‘인물’도 보겠다고 응답한 이들의 까다로운 정치적 입맛을 맞추려면 유권자 지형을 고려한 디테일한 후보 선출과 공천 과정의 안정적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선거 과정을 보면 진보 정당은 복지와 통일에서, 보수 정당은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보수 정당의 대선 주자로선 이례적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의제 선점’ 전략이다. 상대의 강점이 차별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선거에서 이겼다.


‘낮은 투명성·도덕성’ 전 연령층서 불만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서 여야는 어떤 의제로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아야 할까. 먼저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 의제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 가장 위협이 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낮은 투명성과 도덕성’이라는 답변(34.8%)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경제적 양극화’(23.7%), ‘국가안보’(16.4%), ‘일자리 부족’(12.8%), ‘안전·재난’(6.9%) 등의 순이었다.


 ‘낮은 투명성과 도덕성’은 모든 연령층에서 상당수가 응답했지만 특히 30대(52.3%)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가 화두였던 데 비해 이번 총선에선 공정과 공평으로 대표되는 ‘정의’라는 개념을 포괄할 수 있는 의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승패의 기준점이 됐던 50~55세에서는 ‘낮은 투명성과 도덕성’(28.5%)보다 ‘경제적 양극화’(31.5%)에 더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복지’에서 ‘정의’로 이슈가 한순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생 이슈에 대해서도 연령·지역별로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20~30대는 ‘주거비 부담’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은 ‘생활비 부담’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은 주거비가 부담스럽다는 응답(43.6%)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경기·인천은 ‘교육비’, 대전·충청은 ‘의료비’, 부산·울산·경남은 ‘의료비·생활비’, 대구·경북은 ‘주거비·생활비’, 광주·전라는 ‘생활비’ 등이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과제 해결 능력에 대해선 새누리당이 다른 정당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한국 사회의 위협 요인과 일상생활의 시급한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은 어디인지’에 대한 설문에 새누리당(44.1%)이 새정치연합(27.8%), 정의당(9.4%)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재 정당 지지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층의 경우 ‘국정 견제론’이 각각 47.2%, 55.7%로 ‘국정 지지론’을 두 배 이상 앞섰지만 과제 해결 능력에선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간의 격차가 5~6%포인트 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들이 정부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지만 대안으로 새정치연합을 지지하는 건 주저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유권자의 신념과 행동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인지 부조화’ 현상을 보이는 계층일수록 투표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여야가 치밀한 설득을 통해 지지 세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에서 이들의 향배가 주목된다.


 1988년 이후 역대 총선 결과를 분석해 20대 총선에서 여야가 각각 얻게 될 의석수도 예측해봤다. 여야 의석수의 추세와 편차 등을 분석한 뒤 현 구도가 그대로 유지됐을 경우 내년 총선에서 얻게 될 의석수의 범위를 예측하는 회귀분석(선형, 다항식) 방식을 활용했다. 기업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상품의 판매량을 예측하거나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판매량을 예상할 때 활용하는 분석 틀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총 의석수 기준으로 새누리당은 최소 147~최대 162석, 새정치연합은 최소 104~최대 138석까지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지금까지의 흐름대로라면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을 이기고 과반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지역구(246석)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은 124~134석, 새정치연합은 88~114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에선 새누리당 23~28석, 새정치연합 16~24석이 확보 가능한 의석 범위로 예상됐다.


 역대 총선 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새누리당(전신 한나라당 포함)은 88년 이후 일곱 차례 선거에서 6승 1패로 새정치연합(전신 민주당 등 포함)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을 이긴 총선은 단 한 차례,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얻은 153석이 전부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50~60대 이상의 연령층이 두꺼워지면서 보수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데다 이들의 충성도와 응집력이 강해 투표율까지 높다”며 “야당이 젊은 세대를 투표장에 끌어올 수 있는 의제를 내놓지 않는다면 기존 선거 구도를 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 구도에선 야당이 불리 새누리당이 지금까지의 승리 방정식을 이어가기 위해선 당과 청와대의 리더십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강약을 강화·보완하는 방식으로 호흡을 맞춘다면 ‘집 나간’ 합리적 경제 보수, 즉 신(新)보수 지지층까지 껴안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 논쟁과 같이 이념 중심의 이슈에서 탈피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이념은 보수를 결집시키지만 중도층과 새누리당 소극 지지자들로 하여금 여당 후보를 외면하게 만드는, 이른바 ‘역동원(逆動員)’의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과거의 구도를 깨고 의회권력을 탈환하려면 문재인 대표와 당내 여러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함께 ‘리더십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과 같은 당내 분열은 마치 장기에서 차·포를 떼고 싸우는 것만큼 불리하다. 세대별 이슈에 맞는 맞춤 공약을 통해 대안 정당으로서 능력을 검증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국정 견제라는 총선 성격과 새정치연합의 정책 능력 사이에서 벌어져 있는 인지 부조화를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조사했나데이터 선거는 한국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여야는 수천만 개의 유권자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세분화해 유권자 타기팅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선거구에선 데이터가 선거의 향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선거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앙SUNDAY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공동으로 두 차례에 걸쳐 여론조사(11월 초, 전국 성인남녀 1000명·4500명 유·무선 전화조사)를 실시해 20대 총선의 구도와 유권자의 투표 성향을 분석했다. 또 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각 정당이 총선에서 얻은 의석수의 추이 등을 분석해 내년 총선에서 각 정당이 받게 될 성적을 예측했다. 여론조사가 ‘구매 의향을 밝힌 데이터’라면 선거 결과는 ‘구매가 확정된 데이터’다. 두 가지 데이터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20대 총선을 미리 들여다봤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천권필 기자?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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