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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기사도 정신'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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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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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품격
차용구 지음,
책세상, 488쪽
2만3000원

‘중세의 기사’를 통해서 풀어가는 남성성의 문화사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평면적으로 접했던 ‘갑옷 속 기사’가 책장을 넘길수록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든지, 영국 왕실의 왕자가 왜 직접 전쟁에 참전하는지 등 서구적 가치 판단의 역사적 배경과 이유를 중세의 기사담을 통해 일러준다.

 저자는 12세기 말에 집필된 ‘긴느 백작 가문사’에 등장하는 아르눌 백작의 삶을 통해 ‘기사의 삶’을 조명한다. 출생부터 교육·성인식·전쟁·성공·출세·연애·결혼 등 저자가 세심하게 연구한 기사들 삶의 궤적을 좇다 보면 어느덧 서양 중세사의 생생한 속살에 닿게 된다.

 기사의 삶은 어릴 적부터 막이 올랐다. 아르눌 백작도 12세 때 부모의 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면서 탈여성화가 시작된다. 중세에는 작은 성(城)을 가진 귀족의 자식들이 상위 군주의 큰 성으로 보내져 10년 넘게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첫 출발은 기사의 시동(侍童)이었다. 기사가 탄 말 곁에서 무거운 방패를 들고 다니며 ‘기사의 자격’을 익혀야 했다. 기사의 7가지 요건이었던 활쏘기·말타기·수영·검술·사냥·체스·수사학(시학)을 섭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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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년 부빈 전투를 담은 그림. 『남자의 품격』 주인공 아르눌이 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림 책세상]

 특히 사냥은 여성과 피지배 계층에 대한 우월성과 지배성을 과시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의 숲은 아직 개간되지 않았고 위험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정이나 용 같은 괴물이 산다는 소문도 돌았다. 실제 사냥을 갔다가 들짐승의 공격을 받거나, 숲에서 길을 놓쳐 목숨을 잃는 기사도 꽤 있었다. 숲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남성성을 발현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12세기 말에는 ‘신(新) 남성’의 잣대가 등장했다.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싸우기만 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기사상이 아니었다. 강인한 육체에 지적인 교양, 세련된 예법이 결부되어야 ‘진정한 남성’으로 여겨졌다. 무예와 용맹이 전부였다가 세련된 화술과 지적인 대화가 기사의 필수 덕목으로 등장했다.

 기사가 된 후에는 상위 군주를 위해 복무했다. 전쟁터에 나가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되는 기사도 있었다. 중세의 관점에서 그건 남성성의 상실을 뜻했다. 그들 중 일부는 수도원에 들어가 성직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중세의 시대적 요구였던 ‘이상적 남성상’이 현대사회에도 ‘기사도 정신’ ‘남성의 매너’ ‘건장한 육체와 지성의 겸비’ 등으로 겉옷만 살짝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시대를 관통하며 통용되는 인간의 바람, 인간의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S BOX] 중세 기사 필수 아이템, 날랜 말과 빛나는 칼

중세 기사들에게 말은 생명과 같았다. 갑옷을 입고 완전무장하면 기사의 몸무게는 약 100㎏에 달했다. 그런 상태에서 전력질주 하려면 강한 말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무어인들이 키우는 말을 최고로 쳤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는 용맹성과 치고 나가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검도 중요했다. 서유럽에서 제조된 검은 단단하고 날카로워서 무슬림 제후들도 부러워했다. 무기 수출을 금했지만 검은 끊임없이 이슬람 지역으로 밀수출됐다. 십자가처럼 생긴 검은 기사들에게 종교적인 힘까지 실어주었다. 어떤 기사들은 칼자루 끝에 그리스도교 성인의 유물을 박아 놓기도 했다. 시종들은 몇 시간씩 들여 검의 날을 벼리고 광을 내야 했다. 무기에 녹이 슬면 혹독한 벌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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