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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강의 프로그램 구성, 마을학교 세운 울산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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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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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처음 문을 연 우리서로 마을학교에서 주민들이 꽃꽂이를 하고 있다. [사진 우리서로 마을학교]

울산시 중구 삼성래미안 2차 아파트에는 지난 한 달여 간 작은 변화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눈치만 보고 모른 척했던 주민들이 지금은 “00엄마”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자주 만나 아이들 교육 문제를 상의하거나 남편 험담도 할 정도로 가까워 졌다. 학교를 마치면 학원 가기 바빴던 아이들은 놀이터 등에서 서로 만나 놀기도 한다.

 벤치에서는 노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오히려 층간소음 등으로 이웃 간에 사소한 분쟁이 잦은 여느 아파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변화는 지난달 23일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학교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이 아파트는 울산 중구와 울산시 평생교육진흥원이 올해 처음 추진한 ‘우리서로 마을학교’가 처음 들어선 곳이다.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내 학교에서 다양한 강좌를 듣고 대화와 나눔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취지다. 처음 3년간 중구에서 2000만원을 강사비 등으로 지원한 뒤 이후에는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위원회가 스스로 운영한다.

 매주 한 차례 오전·오후에 2시간씩 집안 물건 수납법, 아이들과 배우는 우리나라 역사, 노인들을 위한 요가 실버교실 등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강좌가 열렸다. 주민 최은영(43·여)씨는 “교육을 받으면서 이웃들과 자녀 교육이나 집안 돌아가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며 “부모들이 친해지면서 자녀들도 자주 어울리는 등 이웃 간에 정이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가 문을 열기까지는 입주민 신경숙(44·여)씨와 박정하(38·여)씨의 역할이 컸다. 지난 7월 울산 중구가 주관한 마을리더·행복학습매니저 양성 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두 달 뒤 중구의 마을학교 신청 공고를 보고 곧바로 “우리 아파트에 마을학교를 세우자”며 뜻을 모았다. 입주자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관리사무소와 주민들 동의를 거친 뒤 강의 프로그램을 구성해 신청서를 낸 결과내 선정의 기쁨을 맛봤다.

 이후 입주자들은 10여 년간 방치돼 있던 경로당을 청소하고 벽지를 교체하는 등 수업할 장소를 꾸몄다. 중구의 도움으로 의자와 책상도 넣었다. 간단한 다과를 할 수 있는 커피포트 등 식기와 아이들 장난감은 주민들 스스로 집에서 가져와 채워나갔다. 처음엔 마을학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주민들의 참여가 적었다. 하지만 박씨와 신씨 등이 주부와 노인들을 직접 만나 학교를 소개하는 등 정성을 기울이자 차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번 소문이 나자 입주민들의 발길이 몰렸다. 강의가 있을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여 학교를 찾았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던 주민들이 금세 ‘이웃사촌’이 돼갔다. 마을위원회는 앞으로 강의가 없는 시간에도 주민들이 모여 다과를 나누는 ‘사랑방’으로 마을학교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동만(47) 마을위원회 위원장은 “아직 초창기라 분야별 외부 강사를 초빙해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주민 재능기부로 강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해마다 2~3개씩 마을학교를 늘려 나가기로 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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