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흔들리지 않는 산, 변하지 않는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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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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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보(82~92)=우하귀 83은 정수. 예로부터 고수들은 상대가 어지러운 신법으로 변화를 추구하면 산처럼 고요한 자세로 다변 속의 허와 실을 간파했다. 고수의 자세는, 만리풍취산부동 천년수적해무량(萬里風吹山不動 千年水積海無量), 거센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산 오랜 세월 물이 흘러들어도 변하지 않는 바다와 같아야 한다.

 84의 젖힘에 나현이 턱을 괸다. 이 수까지 받아주는 건 활용당하는 꼴이라는 판단이다. 생각이 그렇다면 손속도 바뀌어야 한다. 83이 상대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자세였다면 85는 기민한 역공.

 바둑의 수읽기에도 정반합(正反合)의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가 83을 보고 84도 순순히 받아주리라 예상할 때 그 의표를 찔러 역습한 수가 85인데 형세는 최초의 수읽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프로의 합(合)이란 그런 것이다.

 86은 급소. 먼저 ‘참고도’ 백1로 빠지면 흑2, 4로 눌려 재미없는 형태라는 판단이다. 89까지, 우변 백 일단을 두텁게 제압해 나쁘지 않다. 90의 젖힘에 91의 순응을 본 검토진이 혀를 내두른다. “그것까지 받아주나?”

 92로 빠져 귀를 내주는 결과가 되더라도 우변을 제압하는 게 좋다는 대세관. 좌변 백은 엷고 흑A 한방이면 우상일대 백도 휘청, 한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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