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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생긴다고 이사왔는데 4년째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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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청과 자곡·세곡동 주민, 도서관 건립 놓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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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자곡·세곡동 강남 보금자리주택 지구 내 도서관 부지. 길 건너 멀리 래미안강남힐즈가 보인다. 이 일대에는 2012년부터 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됐다. 그러나 LH공사와 강남구의 의견차로 이 부지는 지금까지 공터로 남아 있다.

구청·LH공사 이견…예정 부지 잡풀만
경남도청서 기숙사 짓겠다 매입 추진
도서관은 건물 1층 절반으로 축소 계획

‘강남구청과 LH공사는 도서관 건립 약속 이행하라!’ ‘경남학사 건립 취소하고 구립도서관 건립하라’

 지난 2일 자곡동 강남 보금자리주택 지구(강남 공공주택 지구)를 가로지르는 도롯가 곳곳에는 주민들이 내건 도서관 건립 촉구 현수막이 보였다. 이 도로를 따라 4500여㎡에 이르는 도서관 부지를 찾아가보니 잡풀이 무성한 공터가 나타났다. 인근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근·대리석·각목 같은 건축자재가 군데군데 쌓여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맡은 LH공사가 도서관 부지로 정한 구역이다. 그러나 주민이 입주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주민들로 이뤄진 공공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애당초 LH공사 개발계획에 도서관 부지로 정해져 있었으니 원안대로 도서관이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민들 말대로 2009년 보금자리주택 지구가 국토교통부로부터 개발 승인을 받을 때부터 이곳은 도서관 부지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부지 구입과 도서관 건립을 놓고 LH공사와 강남구청이 이견을 보이며 도서관 건립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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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설치한 도서관 건립 촉구 현수막이다.

 LH공사는 구가 87억여원에 달하는 이 부지를 매입해서 그 위에 도서관 건물을 지으라는 입장이지만 구청은 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강남구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재정이 열악해 부지 구입과 건물 공사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전에 LH공사 측에 토지 기부채납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서관 부지 근처에 있는 58억여원의 공공청사 부지를 지난해 말 공사에 샀고 이곳에 세곡동 주민센터 겸 문화센터를 지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도서관까지는 짓고 싶어도 지을 돈이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구는 거꾸로 “LH공사에서 도서관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LH공사 관계자는 “2009년 국교부에 개발 승인을 받기 전 강남구와 협의 과정을 거쳤다”며 “당시 구에서는 도서관 부지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고 이후 부지 매각 조건을 문의해 와 답변해 주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구가 도서관 부지를 살 의향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소리다.

 지구 개발 주체와 지자체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주부 권모(37·래미안강남힐즈)씨는 “도서관이 들어설 줄 알고 입주했다”며 “동네에 별다른 주민 편의시설이 없는데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에 고등학교도 들어올 예정이라 도서관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최모(43·LH강남아이파크)씨도 “인근에 새로 지어진 초·중학교에는 책이 부족하고 동네에도 아이들이 책을 접할 만한 시설이 별로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도서관을 건립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난항을 거듭하던 도서관 건립 문제는 지난 7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남도가 도서관 부지를 사서 경남학사(남명학사)를 짓겠다고 나서면서다. 이곳에 경남 출신 대학생들이 생활할 기숙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350~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층별 2112㎡ 넓이에 5개 층 규모다. 구는 경남도와 협의를 거쳐 건물 1층 절반(1056㎡)을 주민을 위한 도서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민 반응은 냉랭하다. 두 자녀를 둔 자영업자 양모(45·강남세곡LH푸르지오)씨는 “주민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고 말했다. 세 자녀를 둔 주부 오모(41)씨도 “아침 8시30분쯤이면 학교에 가는 아이들 행렬이 장관을 이룰 정도”라면서 “1층 절반 규모의 도서관으로는 아파트 단지마다 사는 주민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구는 경남도가 올해 안에 부지를 사서 내년에는 착공에 들어가리라 전망한다. 그러나 이 전망대로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구와 주민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없어서다. 공공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아파트 단지별로 경남학사 건립 반대 서명까지 받고 있다. 이에 대해 LH공사는 “우리가 나서기엔 난처한 입장”이라며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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