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人權委로 간 시간강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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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학 시간강사들에게는 세가지의 딜레마가 있는데 그것을 흔히 3D로 부른다고 한다. 첫째, 방학 때 수입이 없다. 그래서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선 막노동판에라도 나가야 한다. 둘째, 전공이 무엇인지 본인도 혼란스럽다.

대학에서 주는 과목대로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강의를 주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서 다른 대학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이들을 보따리장수라 부른다. 대학강사 노조(한국 비정규직 대학교수 노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지난달 서울대의 한 시간강사가 자신을 '상자 속의 사나이'로 표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 이후 시간강사 문제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됐다. 이들의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지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일부 교수들은 "무관심했던 우리도 공범"이라며 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계속하고 있다. 다른 한편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잘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 선택한 길인데 사회가 그들의 경제적 안정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논리에서 출발해 '싫으면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다그친다.

시간강사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는 5만여명으로 전임교수보다 1만여명이나 많다. 이들은 대학 강좌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교원'이 아닌 '일용잡급직'으로 규정돼 신분을 보장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임금 수준도 전임교수의 10분의1에 불과해 최저생계비를 벌기도 빠듯하다.

생활인으로서의 기본인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전임교수 확보율이 60%대에 머물고 있는 한편에 이런 소외지대가 존재하는 현실을 두고 한 교수는 "우리 경제의 바탕인 3D 업종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끌고 나가듯, 대학 교육이 시간강사들에 의해 헐값으로 지탱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문의 후속세대로서 시간강사들의 미래는 어떤가. 한 조사에 따르면 교수가 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0.7%가 '작은 편'(49%)이라거나 '거의 없다'(21.7%)고 응답했다. '교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응답은 5.8%에 불과했다. 열악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탓으로 인터넷 게시판엔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는 글이 넘친다.

대학강사 노조는 최근 시간강사 제도를 국가인권위에 제소했다. 불평등한 제도와 부당한 권리 제한으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로 본 것이다.

즉, 교원의 지위에 관한 법정주의가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역할에 맞는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고, 동일한 가치의 교육활동에 종사하면서도 임금이나 복지혜택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고의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학 교육의 단순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의 호소에 인권위는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시간강사들의 처우와 법적 지위 개선은 DJ 정부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도 공약 사항이다. 그런데도 막상 실행은 지지부진하다. 예나 지금이나 돈 타령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대책이 쉽지 않다고 더 미룰 수도 없다. 정부는 우선 가능한 것부터 시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최소한 대학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 보장을 제도화하고 직장 건강보험부터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여름방학을 맞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해야 하는 시간강사들이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천수 사회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