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장 직원 절반이 활기찬 ‘시루바’ … 매출이 3배로 뛰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지난달 5일 일본 금속부품업체 가토제작소 공장에서 올해로 3년 차인 60대 ‘시루바(Silver)’ 직원 무라모토가 기계로 금속판형을 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아내도 이곳에서 일한다. [조혜경 기자]

노인들이 고령화와 양극화의 함정에 갇히고 있는 상황에서 출구는 무엇일까. ‘노인 맞춤형 일자리’ 창출은 행복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핵심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성공적으로 노인 고용 실험을 진행 중인 일본 중견기업을 찾아 그 가능성을 모색해봤다.

코앞에 온 '실버코리아' <하> 노인과 함께 일하는 일터
일본 가토제작소, 노인 고용 성공기
“능력 있는 사람은 나이 들어도 유능”
가토제작소 “꼭 필요한 시간에 활용”

기사 이미지

 지난달 5일 오후 일본 기후현 나카쓰가와시에 있는 금속부품 제조업체 ‘가토제작소’ 공장. 30㎝ 두께의 철문을 열었다. 작업장 안에서 남자 직원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납품할 부품을 문지르거나 조이고 있었다. ‘MRJ’로 불리는 이 부품은 보잉 787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미세한 불량도 용납되지 않는다. 공장 전체에 휴식 시간을 알리는 큰 벨소리가 울리자 순식간에 조명이 꺼졌다. 두 시간 동안 눈 한 번 떼지 않을 정도로 부품 손질에 열심이던 직원들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작업모와 고글을 벗으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눈가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가토제작소의 60세 이상 노인 직원, 일명 ‘시루바(Silver)’들이다.

 가토제작소의 시루바들은 팔팔하다. 쉬는 시간에도 맨손체조를 하고, 정규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등 활기가 넘쳤다. 휴식 시간에 만난 엔도(66)는 “연금만으론 생활이 빠듯해 이곳을 찾았는데, 지금은 ‘나도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일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30여 년간 나카쓰가와의 특산품인 ‘호두 양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가토제작소에 나온 지 2년째다.

 올해로 9년차 직원인 후지(74)는 특별 스카우트된 경우다. 그는 원래 비행기 부품 관련 공장에서 일하다 은퇴했는데, 가토제작소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대표에게 그를 추천했다. 후지는 30~40대 정규직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는 이날 비행기 부품 제조기술을 배우는 정규직 직원과 부품 도면을 앞에 놓고 토론 중이었다. “나이가 많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뭐든 가르쳐줄 수 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열심히 분발해 어디 한번 기술로 나를 이겨봐!’라고 말하곤 합니다.”(후지)

 1888년 세워진 가토제작소는 비행기·자동차·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금속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건 2001년이다. 현재 104명의 직원 중 절반인 52명이 노인이다. 최고령 직원은 82세. 60대 직원들은 ‘청년’으로 불릴 정도여서 “역시 젊군, 팔팔하네”라는 우스갯소리가 오가곤 한다.

 왜 노인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을까. 창업자의 증손자인 가토 게이지(54) 대표는 “회사 대표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주문이 쏟아지면서 주 7일 라인을 가동해야 겨우 납품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연일 초과근무를 해야 했지만 지역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나선 상황이었다. 그때 가토 대표는 ‘나카쓰가와의 노인 인구 중 절반이 미취업 상태로 그중 17%가 취업을 희망한다’는 연구 결과를 접했다. 그는 즉시 신문에 구인 전단을 끼워 배포했다.

 ‘의욕 있는 사람을 구합니다. 남녀 불문. 경력 불문. 단, 나이 제한 있음. 60세 이상인 분만’. 시루바 채용의 시작이었다. 첫 채용 인원은 15명. 이들이 주말에 나와 일하며 주 7일 생산체제가 확고해졌다. 가토 대표는 3년 만에 회사 매출을 15억 엔에서 40억 엔(약 375억원)대로 끌어올렸다. 2008년 리먼 사태로 대다수 일본 중견기업에 ‘해고 열풍’이 불었으나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은 채 위기를 넘겼다. 다만 납품량이 줄어 생산체제를 주 7일에서 주 5~6일로 축소했다.

 노인 직원 고용의 핵심은 ‘주 28시간 이하 근무’다. 일본 근로법상 정규 근로시간(40시간)의 3분의 2 이상 일할 경우 회사가 사회보장 책임을 지는 대신 정부에서 나오는 노인연금을 받을 수 없다. 연금 액수는 평균 월 120만원가량. 이 회사가 노인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시급은 800~900엔(약 9000~1만원)으로 한 달이면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 가토 대표는 “노인들 입장에선 연금과 월급을 동시에 받는 게 이익”이라며 “그들도 더 일하게 해달라고 할 이유가 없고, 회사도 꼭 필요한 시간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상 노인 직원들의 정년은 70세이지만 회사는 이들이 그만두고 싶어 할 때까지 일하게 한다. 이날 만난 가토제작소 사람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이렇게 말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유능한 법입니다!”

나카쓰가와=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