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F-16 예산 858억, 무이자로 잠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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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방위사업청이 공군 주력기인 KF-16 성능 개량 사업과 관련해 예산만 확보해 놓고 실제론 집행하지 않은 채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업자도 안 정하고 예산만 따내
방사청, 올 686억 중 2300만원만 써
감사 묵살한 채 또다시 650억 요구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해 “KF-16의 레이더와 소프트웨어 등을 개량한다”며 993억1600만원의 예산을 따놓고는 이 중 49억7800만원을 썼다. 집행률 5%다. 올해는 685억9000만원의 예산 중 고작 2300만원을 집행했다. 0.03%다. 돈을 쓰지 못한 이유는 방사청이 전투기 성능을 개량할 회사도 정하지 않은 채 미리 예산부터 책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방사청은 지난해 초 BAE(영국계 미국 군수회사)와 성능 개량 계약을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BAE가 사업비를 8000억원 올리는 바람에 계약은 결렬됐다. 지난해 말 국회 예산심사가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당시 이용걸 방사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새 사업자와의 계약이 2015년 1분기 안에 이뤄진다”며 당초 요구한 예산 685억9000만원을 그대로 승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그 이후 1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도 새 사업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방사청은 이 상태에서 올해 또다시 650억원을 요구했다. 방사청은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사업체를 문제삼자 문제를 제기한 의원들에게만 “10월 30일 록히드마틴의 LOA(구매수락서)를 받았다”고 비공식 통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KF-16에 대한 LOA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방사청은 국회가 요구한 감사원 감사 요구도 묵살했다. 국회는 지난해 예산 승인 조건으로 “방사청 스스로 부실계약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계약 파기 과정에서 BAE가 사업비로 1500억원을 가져가면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책임소재를 가리라는 요구였다. 방사청은 “계약 중에 감사를 받으면 불리해진다”며 감사를 미뤘다.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도 “BAE로부터 (계약금의 3배인) 위약금 4000만 달러(455억원)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돈을 받지 못했다. 뒤늦게 국제 소송을 제기했지만 돈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쓰지 않고 쌓아둔 예산에 대한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위원회의 전문위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KF-16 관련 예산 중 1억1179만 달러(1272억원)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계좌에 있었다. 계약을 해지한 BAE가 사업비를 빼가고 남은 돈이다. 미 정부는 “한국의 계약 파기 정산금을 확보한다”며 이 중 1억300만 달러(1172억원)를 DFAS(국방재무회계본부) 계좌로 옮긴 뒤 2765만 달러(314억원)를 빼갔다. 남은 돈은 7535만 달러(858억원)다. DFAS 계좌는 이자가 없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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