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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에 인사 강요 의혹 … 동래구 아파트 갑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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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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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아파트 경비원이 출근길 주민에게 일일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두고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퍼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출근하는 주민에게 허리 숙여 인사
주민 일부 “경위 밝히고 사과해야”
입주자대표회의는 “자발적인 것”

 부산시 동래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보안요원)들이 매일 아침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게 된 것은 지난 9월부터다. 경비원들은 지하철과 연결된 아파트 지하통로에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직장인 등 어른에게는 물론 중·고등학생에게도 했다. 경비원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하며 인사를 받아주는 입주민도 있지만 상당수는 목례 없이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두 달간 이런 장면을 목격한 한 입주민은 지난 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 2장을 포함한 글을 올렸다. 그는 “두 달 전부터 나이 많은 경비 할아버지들이 출근하는 주민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며 “일부 입주민이 ‘다른 아파트는 출근시간에 경비가 서서 인사하던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했고, 입주자대표회의가 지시하면서 인사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경비원들이 끝도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은 상식 밖의 갑질”이라며 다른 네티즌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오히려 고생하는 경비원들에게 입주민이 인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 “경비원은 하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입주민의 게시글에는 순식간에 댓글 수백여 개가 달렸다. 대부분 비판성 글이었다.

 일부 입주민들도 입주자대표회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을 ‘103동에 살고 있는 입주민’이라고 밝힌 한 주민은 아파트 출입구에 ‘○○○아파트 동대표회의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붙였다. 그는 “입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비원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 싶다”며 “대다수의 주민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동 대표들은 경위를 밝히고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논란이 일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는 5일 “경비원들이 자발적으로 인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입주자대표 A씨는 “일부 주민이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을 예로 들며 경비원에게 인사를 시키자고 주장한 것은 맞다”면서도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은 인사를 목적으로 출입구에 서있는 게 아니라 혼잡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배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지하에서 잠을 자는 노숙인이 발견됐고 지하 통로 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며 “경비원이 고개 숙여 인사한 것은 가만히 서있기 민망해서 인사라도 건넨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 측은 주민 항의가 일자 이날부터 경비원의 출근길 인사를 중단하도록 했다.

 최지웅 노동인권연대 사무처장은 “입주민에게 의무적으로 인사를 건네도록 한 게 경비 업무라고 보기 힘들고,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강압적으로 이뤄졌다면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며 “입주민과 경비원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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