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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傳(7)] 장성택과 이설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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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부부(가운데)가 모란봉악단 단원 사이에 앉은 최용해(왼쪽 둘째)?김기남?김양건 등과 함께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의 합동공연을 관람했다. [사진제공=노동신문]

장성택이 처형된 원인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의 과거가 발각됐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한 때 유행했다. 사설 정보지 ‘찌라시’를 통해 염문설이 퍼졌고 이설주가 장성택의 소개로 김정은을 만났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설득력이 더해졌다.

하지만 그 염문설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3년 12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그것이 낭설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염문설은 일단락됐다.

그러면 왜 그런 소문이 났을까? 그것은 장성택 처형되기 두 달 전부터 북한 매체에서 이설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면서 장성택과 이설주의 염문설은 장성택이 처형되기 하루 전날 삽시간에 퍼졌다. 그러나 장성택이 처형 된 지 5일 뒤 이설주가 김정일 사망 2주기 행사장에 나타나면서 염문설은 쏙 들어갔고, 남 전 원장의 발언으로 염문설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그러면 장성택과 이설주는 어떤 관계였나?

장성택은 2007년 말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산하 인민보안부(한국의 경찰청) 소속의 합주단을 대폭 증원했다. 당시 인민보안부 합주단은 촌스러운 악단이었다. 장성택은 그 합주단을 왕재산 경음악단과 보천보 경음악단 못지않는 ‘미녀 악단’으로 변모시켰다.

이 때 평양 금성학원을 졸업한 이설주가 인민보안부 합주단의 오디션에 응모했다. 금성학원은 북한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최고의 중등교육기관이다. 김정일의 기쁨조 출신 가운데 이 학원 출신이 많다. 보천보 경음악단의 전혜영· 이분희도 이 학원 졸업생이다. 금성학원은 평범한 가정의 자녀가 신분사회의 벽을 뚫고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출로이기도 하다.

이설주는 1989년 9월 28일 함경북도 청진시 출생으로 장성택과 동향이다. 장성택은 자신과 같은 지역 출신인 이 미녀에게 반해 인민보안부 합주단의 대표 가수로 발탁했다.

2009년 1월에 후계자로 지명 받은 김정은은 그 해 봄에 인민보안부 합주단을 시찰하면서 이설주를 만났다. 눈이 크고 오동통하며 귀여운 미녀를 좋아하는 김정은은 이설주에 주목했고 김정일이 2009년 5월에 만든 은하수 관현악단으로 이적시켰다. 이설주는 이 악단의 대표 가수가 됐다. 그리고 김정은은 2010년 가을 이설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염문설은 평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성택의 여성 편력이 호사가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생산되고 확산된 측면이 있다. 당시 장성택의 권력을 보면 이설주 보다 훨씬 예쁜 여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권력의 ‘쓴맛’을 이미 맛 본 장성택이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국가안전보위부가 김정은과 결혼식을 올리기 이전에 이설주의 뒷조사를 샅샅이 했을 것이고, 과거 중전을 간택할 때처럼 ‘영부인’으로서의 결격 사유가 없는지를 조사했을 것이다. 따라서 염문설은 북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장성택이 처형되기 두 달 전에 왜 이설주가 공식석상에서 사라졌을까? 이설주가 사라지기 두 달 전에 은하수 관현악단 소속 예술인 10여명이 음란 동영상을 찍은 혐의로 처형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가운데 보천보 경음악단 출신의 성악가수로 이름을 떨쳤던 현송월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현송월은 2014년 5월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건재함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송월 처형’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현송월은 김정은의 애인이었다. 김정은은 결혼하고도 5살 연상인 현송월을 자주 만났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현송월의 ‘입’이 화근이었다. 평소 이설주와 친한 현송월이 이설주에게 자랑 삼아 김정은과의 관계를 털어놨다. 그 소문은 은하수 관현악단에 이미 퍼져 단원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이설주는 김정은에게 물었다. 이에 격분한 김정은이 현송월이 소속된 은하수 관현악단에 ‘철퇴’를 내렸다. 이설주는 친한 언니와 남편의 만남에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2013년 10월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하수 관현악단 단원 10여명의 총살설은 사실”이라고 확인했으며 “이들의 처형이 이설주의 추문과 관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병호 국정원장은 2015년 4월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달에도 음란 동영상 추문에 휘말렸던 은하수 관현악단 총감독 등 예술인 4명이 간첩 혐의로 처형됐다”고 밝혔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현송월은 살아남았고 김정은이 2012년에 만든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기여했다며 모란봉악단 소속 예술인들을 특별 진급시키고 예술인들에게 주는 국가 최고의 영예인 ‘인민 예술가’ 칭호와 ‘국기 훈장’ 등 훈장을 수여했다.

다음은 [장성택傳(8)] 장성택과 한국편입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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