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안 내리는 명품 때문에 개별소비세 다시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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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시행했던 고급 시계·가방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를 2개월 만에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세금 감면→소비자가격 인하→소비 증대라는 수순을 기대했지만 제품가격을 함부로 내릴 수 없다는 글로벌 명품업체의 반발 때문이다. 효과도 없는데 세금만 깎아줄 수는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불과 2개월 만에 정책을 뒤집어 정부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방·시계·사진기 등 5품목
인하 두 달 만에 원상 복구키로
값 낮춘 귀금속·모피는 계속 유지

 기획재정부가 가방·시계·사진기·융단·보석·귀금속·모피·가구 등 8개 품목에 붙는 개소세를 낮춘 것은 지난 8월 27일이다. 출고가격이 500만원인 시계에 붙던 개소세 60만원과 교육세 18만원(개소세의 30%)을 깎아줬다. 78만원의 세금이 감면되니 가격을 내릴 법도 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기재부의 현장 점검 결과 개소세 대상인 고급 시계나 가방·사진기·융단·가구의 소비자가격은 낮아지지 않았다. 다만 보석과 귀금속, 모피가격은 떨어졌다. 개소세를 감면했는데 소비자가격이 같다면 깎아준 세금은 제조·수입업체의 몫이 된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가격이 낮아지지 않은 시계 등 5개 품목에 대한 개소세 부과 기준을 8월 27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다만 가격이 낮아진 귀금속·보석·모피에 대한 개소세 부과기준(500만원 초과)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금은 출고가격이 500만원을 초과하는 시계·가방 등에 20%의 세율을 적용하지만 이달 중 개소세 시행령이 개정되면 예전처럼 200만원을 넘는 제품에 개소세가 부과된다.

임재현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3일 기자 설명회를 하고 “개소세 기준가격을 내린 것은 제품가격의 인하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개소세 인하 혜택을 제조·수입업체가 보고 있어 이를 환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개소세 인하 후 명품업체와 간담회를 하고 정부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가격은 해외 본사가 정하는 것이라 판매가를 내릴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서 한국 사람만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국 시장까지 고려해 제품가격을 정한다”며 “한국 정부가 개소세를 내렸다고 바로 가격을 떨어뜨리면 고객을 빼앗기는 다른 나라 지사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명품업체 담당자도 “업체마다 다양한 제품군이 있고 특성이나 인기도를 감안해 가격을 정한다”며 “개소세 인하를 이유로 일부 제품가격을 내리면 전체 판매 상품의 가격 체계가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개월 만에 정책을 뒤집어 정부 신인도 측면에선 타격을 받았다”며 “지난 8월 개소세 부과 기준을 바꾸기 전에 명품업체를 대상으로 소비자가격을 내릴 수 있는지 타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박현영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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