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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장 이 문제] 천안 '태조산' 훼손 가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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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충남 천안의 진산(鎭山)인 태조산(해발 4백21m)이 망가지고 있다. 지난해 산 중턱에 대형 레스토랑이 들어선 데 이어 산 기슭에는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오는 30일엔 산을 가로 지르는 관통도로도 개통된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서 후백제와의 마지막 일전을 준비한 데서 이름이 붙여진 산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그러나 최근 개발 사례가 부쩍 많아지면서 경관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관 망치는 고층 아파트=천년 고찰인 성불사에 오르는 도로 양편으로 1천여 가구의 고층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오른쪽에는 내년 6월 입주 예정인 부경아파트(4백87가구) 15층짜리 9개 동이 건설 중이다. 현재 10층까지만 지어진 상태인 데도 태조산을 가려 정상 부근만이 간신히 시야에 들어 온다.

맞은 편의 옛 쓰레기 매립장에는 대림아파트(5백68가구)가 지어진다. 현재 10여년 전 매립을 마친 땅을 파헤치고 부지 및 진입도로를 조성하고 있다.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군데 군데 고여 있고 폐비닐.프라스틱 용기 등이 흉물스럽게 드러난 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건설사는 아파트 건설 허가를 낼 때 이곳 쓰레기를 모두 파내, 재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감독기관의 관리 소홀로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다시 묻혀질 위험이 크다.

시는 매립장 부지에 아파트를 지으면 환경오염 방지 시설을 위해 따로 돈을 쓸 필요가 없어지고 환경부의 사후관리 점검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판단 아래 이곳에 아파트 건설을 승인해 줬다.

▶ 녹지 훼손도 잇따라=지난해 여름 태조산 중턱 구름다리 부근엔 배(船) 모양의 대형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3층 규모의 이 레스토랑엔 3백평의 주차장이 달려 있다.

시는 이곳이 자연녹지지역이어서 음식점 등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농지법 등 관계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다고 밝히지만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건물이 들어섰는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태조산을 관통해 착공 2년 만에 이달 30일 개통하는 유량로(5km)에 대해서도 산림을 훼손하며 굳이 놓지 않았어도 될 도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이 도로는 용연저수지 및 독립기념관 등을 잇는 관광도로의 기능과 국도 21호선 체증 해소 등의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용연 국민관광단지 개발은 사업성이 희박해 15년째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천안~병천 고속화도로가 올해 말 개통할 예정이기 때문에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랑로의 개통으로 길을 따라 러브호텔.음식점 등이 속속 들어설 조짐을 보이는 등 태조산과 흑성산 일대의 훼손만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개발에 신음하는 태조산=고려군이 후백제를 치기 위해 군량을 비축한 곳이라는 유량(留糧)동, 왕이 머무른 골짜기를 의미하는 유왕(留王)골 등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아 있다.

태조산에 건물이 들어선 것은 1979년 호서대 천안캠퍼스가 효시다. 그후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86년 중앙소방학교, 87년 교보생명연수원, 96년 국민은행연수원, 99년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 등이 들어섰다.

천안=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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