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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관계 회복 위한 ‘김정은 히든카드’는 일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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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7 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큰 게임’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9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류윈산(劉雲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뜻밖의 카드’로 일본을 꺼냈다고 대북 소식통들이 전했다.


최용해 당 비서가 2013년 5월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최 비서는 시 주석에게 열흘 전 방북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특사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참여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 비서는 시 주석에게 ‘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고 시 주석은 고개만 끄덕였다”고 전했다.


북한은 왜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일본을 꺼냈을까.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미·일 동맹이기 때문이다.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장은 “중국은 동북아에서 지금과 같은 미·일 동맹, 특히 이들의 군사활동이 지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미 동맹은 초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 카드’는 중국을 예민하게 만든다. 북한이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이와관련, 김정은이 내년 상반기에 중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10월 31일 중국 외교 관계자의 말을 인용, 김정은이 내년 상반기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는 계획을 양측이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2013년에는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미운 감정이 앞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남중국해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동향은 중국에 중요하다. 일본은 지난 9월 19일 새 안보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실상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이번에 제·개정된 11개 법률에 따르면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일지라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를 ‘존립 위기 사태’로 규정해 자위대가 무력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서 원조 줄이자 일본에 접근스가 요시히데(管義偉) 관방장관은 최근 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이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 중인 인공섬 12해리(약 22.2㎞) 안으로 들어간 것에 대해 “열려 있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바다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김정은이 ‘일본 카드’를 꺼냈을 때 류 상무위원은 귀담아 들었다. 김정은은 “조·중(朝·中) 전통은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기록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계승하고 빛내자”고 말했다. 여기서 강조한 것이 ‘실천’이다. 중국이 경제적 지원을 실천하지 않을 경우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북한에 ‘3대 원조’라는 명목으로 연간 50만t의 원유 공급, 10만t의 식량 원조, 2000만 달러 규모의 비료를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체면을 구기자 북한에 ‘죽지 않을 정도’만 지원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래서 최 비서는 시 주석을 만나 ‘피를 나눈 동지’를 위해 ‘3대 원조’를 100%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시 주석은 “그것은 북한 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냉담하게 잘라 말했다.


시 주석의 반응을 들은 김정은은 일본을 중국의 대안으로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김정은은 재일동포 출신인 어머니 고영희(1953~2004)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릴 적부터 일본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김정은은 일본에게 전쟁배상금으로 100억~300억 달러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에 전쟁배상금을 주고 북한 동해안에 중화학공업단지를 이전하는 계획을 이미 오래전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와 비슷한 전략이다.


최근 일본은 자위대가 북한 지역에 진입할 때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으라는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일본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과의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에 진입할 때는 한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타니 방위상이 거부 의사를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이 한국과 별도로 유엔에 가입돼 있어 독립적인 국가이고, 한국은 휴전선 남쪽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주장에는 향후 북한에 진출할 일본 국민·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대가 북한 지역에 진입할 수 있다는 속셈이 담겨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일본은 북한 동해안에 중화학공업단지를 이전시킬 계획을 실행하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동해안에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성진제강연합기업소 등 북한의 대표적인 중화학 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는 1938~42년 일본의 미쓰비시(三菱)와 일본제철의 자본과 기술협력으로 만들어졌고, 성진제강연합기업소는 45년 일본에 의해 고주파 제철소로 설립돼 특수강을 생산했던 공장이었다. 일본 기업인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자신의 선조들이 지은 이들 기업들과 일본 기업들의 전략적 제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의 요구가 통했는지 중국은 북한의 숙원사업인 신의주 국제경제지대(특구)를 다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9월 전 세계를 상대로 발표한 지 한 달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초대 신의주 행정장관이었던 양빈(楊斌)이 ‘허위 투자, 뇌물 수수, 사기, 농경 토지 불법 점용’ 등으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장성택(1946~2013)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백방으로 뛰었지만 중국 정부의 비협조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류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김정은의 ‘베팅’에 심사숙고한 중국이 북한의 숙원사업을 들어준 것이다.


‘제2 성장’ 노린 일본도 북한에 관심김정은은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려는 중국과 일본의 속내를 꿰뚫고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그는 중국에 ‘일본 카드’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일본에는 ‘제2의 성장’의 기회로 유혹하고 있다. 과거 김일성이 중·소 분쟁을 활용해 생존을 모색한 것처럼 자신은 중·일 갈등 속에서 북한의 생존을 찾고 있다. 김일성은 소련의 영향을 받았고, 김 정은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은과 관련된 친일본 이미지를 세탁하려고 한다. 평양 혁명열사릉에 조성된 고영희 묘비명을 ‘고용희’로 표기하는 등 다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 재일동포 출신을 은폐하려고 했다. 묘비명 뒷면에는 ‘1926년 6월 26일 출생, 2004년 5월 24일 서거, 선군 조선의 어머니 고용희’라고 기록됐다. 출생연도도 실제와 다르다. 하지만 북한의 당·군 간부 등이 조직적으로 참배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일성은 중·소, 김정일은 미·중, 김정은은 중·일 사이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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