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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헬조선’ 외는 젊은이여,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용기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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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시대를 바꿔온 문학의 힘을 역설했다. 그에게 펜은 인간과 시대를 이해하는 광부의 곡괭이와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어령(82)을 말하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기 쉽다. 그가 살아온 궤적이 넓고 넓어서다. 문학부터 디지털문명까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소설가·평론가·문화기획자·교수·언론인 등 전방위 활동을 펼쳐왔다. 초대 문화부 장관(1990~91)을 지낸 까닭에 편의상 이어령 전 장관이라고 부른다.

글쟁이로 돌아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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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이 걸어온 시공간을 축약하면 ‘창조’가 맞춤일 것 같다. 그의 평전을 쓴 소설가 호영송은 ‘창조의 아이콘’이라 했고, 그와의 대담집을 낸 출판인 강창래는 ‘유쾌한 창조’라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도 책상 뒤에 붙은 글자 ‘창(創·작은 사진)’이었다. 일본 서예가 가네다 세키조(金田石城)에게 선물받은 것이다. ‘영원한 현역’인 이 전 장관이 모든 공적인 타이틀에서 은퇴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그는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15년간의 중앙일보·JTBC 고문에서도 물러났다.

 - ‘창(創)’이 모든 걸 대변하는 것 같다.

 “어느새 내 로고처럼 됐다. 그런데 요즘 나는 창조라는 단어를 안 쓴다. 10년 전에 처음 꺼낸 말인데, 요즘은 누구나 창조, 창조한다. 유행을 좇아가면 안 된다. 미녀를 처음 장미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지만 두 번째 그 말을 쓴 사람은 바보다. 사실 창조는 좋은 말이 아니다.”

 - 무슨 말인가. 창조경제가 화두인데.

 “창조 안 하고 사는 게 최고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게 제일 편하다. 개인이고, 회사고, 나라고, 어제의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까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닌가. 창조는 가장 손해 보는 일이다. 길을 내는 사람과 다니는 사람이 다르지 않은가. 청계천을 보라. 문화부 장관 취임사에서도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사는 목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창조다. 독일어 ‘덴노흐(dennoch·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좋아하는데, 인간의 역사를 지탱해온 게 바로 덴노흐다. 내일 죽는 줄 빤히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 이어령과 은퇴, 조합이 안 되는 단어다.

 “글 쓰는 데 은퇴는 없다. 생명(life)에도 죽음에도 은퇴는 없다. 다만 위원장·고문 등 여러 사회활동, 즉 생존을 위한 리빙(living)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여든에 그만두려고 했는데 조금 늦어졌다. 이미 접어든 고령화사회, 80세까지도 충분히 할 일이 있고, 세금을 내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이 아무개’가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80이 넘으면 정신적·육체적으로 남과 함께하는 일을 해선 안 된다. 세계 역사나 문화를 봐도 여든을 넘어 활동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 글을, 책을 계속 쓰겠다는 뜻 같다.

 “그래서 인문학이 좋다. 자연과학이나 기술 계통, 혹은 의사·판검사를 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하는 유언도 인문학이다. 인간에 관계됐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이나 과학에서도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그건 아니다. 인문학은 정치나 경제의 시녀가 아니다. 인문학이 왕도다. 31일 총 10회 방영을 마치는 KBS ‘이어령의 100년 서재’를 10권의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

 “후임이 정해지면 이것도 내려놓을 생각이다. 문화재단으로 바꿔가겠다. 한·중·일이란 개념은 10년 전에 내가 처음 제기했다. 모두가 글로벌리즘을 외칠 때였다.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때 일본에서 1년간 공부했는데 아시아 시대가 올 것으로 예감했다. 중·일 패권주의가 도래할 것이고, 한국은 둘 중 한 곳에 붙어야 하는 비극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 한·중·일 정상회의가 곧 열리는데.

 “한·중·일을 하나의 숙어(熟語)처럼 만들었다. 2005년 중앙일보에 한·중·일 30인회를 제의했고, 2008년 비교문화연구소를 출범시켰다. 가위바위보 이론도 접목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가위바위보처럼 3국이 세 발로 서자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의 2항대립에선 한국이 낄 틈이 없다. 3항순환이 살아갈 길이다. 세 나라를 동시에 봐야 미래가 있다.”

 - 예언가 같은 느낌을 준다.

 “픽션이 전공이다. 시를 짓고, 소설을 쓰는 문학인은 상상으로 내다보고, 위에서 내려본다. 사회학자나 정치학자의 실증적·미시적 시각으론 보기 어려운 것이다. 2000~3000년의 문학은 살아 있지만 300년 전 뉴턴의 법칙은 벌써 낡은 게 되지 않았나. 문학에는 시대착오가 없다. 항상 미래의 예언가다.”

 - 최근에는 생명자본을 얘기한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노인이 혼자 죽어서 발견되는 세상이다. 돈은 있는데 인간자본이, 생명자본이 없는 거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지금은 먹고 입고 자는 금융·산업자본의 시대가 아니다. 의(衣)가 패션이 되고, 식(食)이 디자인이 되고, 주(住)가 예술이 됐다. 의식주가 진선미로 바뀌고 있다. 진선미가 사람을 살린다. 문화자본의 진전된 형태, 그게 생명자본이다.”

 - 개인적으로 수술도 받았는데.

 “평생 병원이라고 가본 적이 없는데 2년 전에 머리에 고인 피를 빼냈고, 지난해 봄에는 맹장을 떼어냈다.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니 생명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동차도 없앴다. 예전에는 운전기사가 나를 컨트롤했다면 이제 내가 나를 컨트롤하게 됐다.(웃음) 이런저런 일을 맡아 달라고 해도 차가 없다는 핑계로 거절할 수 있다.”

 - 국사 교과서로 나라가 시끄럽다.

 “싸움을 하려면 팩트부터 정확하게 챙겨야 한다. 논쟁 목록을 만들어 서로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러면 좌우 이념논쟁이 공허해지고, 국민이 판단할 근거도 또렷해진다. 역사 교육에 앞서 토론교육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여든 야든 논리가 맞지 않는다. 진영논리만 앞세운다. 다양성을 주장하면서 획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편파성을 비판하면서 수능 얘기를 꺼낸다. 논리가 없으면 부부싸움도 제대로 못한다. 국회를 토킹숍(Talking Shop)이라 하는데, 토론 수준을 보면 여야가 따로 없다.”

 - ‘헬조선’ ’흙수저’ 등 청년층의 자괴감이 크다.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 낯이 뜨겁다. 그런데 되묻고 싶은 게 있다. 지옥 같은 조선을 떠나 이민 가고 싶은 나라가 있으면 한번 적어보라. 그리고 그곳이 천국인지 공부해봐라. 스위스에는 민병대가 있고, 하와이에선 집밖에 내놓는 꽃까지 간섭을 한다. 취업난·양극화 등 눈앞의 고통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상충)’의 결과다.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걸 떨치고 나가야 한다. 우리는 숱한 고비를 넘겨왔다. 지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남만 탓하면 영원히 지옥이다. 젊은이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있다.”

 - 다음달 11일 젓가락 페스티벌을 연다.

 “충북 청주에서 열린다.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젓가락은 막대기 두 개에 불과하지만 젓가락질은 우리의 문화유전자다. 한·중·일 3국의 공통문화다. 무엇보다 젓가락은 짝의 문화다. 두 개를 어우르는 문화적 학습이다. 개체 중심의 서양문화와 다른 동양의 상호문화다. 그런데 젓가락질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25%밖에 안 된다고 한다. 몸뚱이가 있어도 문화유전자가 없으면 한국인이라 할 수 있나. 1m짜리 젓가락 이벤트도 준비했다. 절대 혼자서 먹을 수 없다. 제 입으로 가져가면 지옥이 되고, 남의 입에 넣어주면 천국이 된다. 21세기에 보내는 메시지다.”

[S BOX] 생사람 그리는 게 문학 … 이어령이 꼽은 3대 천재 이규보·황진이·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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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조물주에게 따졌다. 세상에 곡식을 준 것은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함인데 왜 인간을 괴롭히는 모기나 벼룩도 만들었느냐고. 부조리한 게 아니냐고 대들었다. 조물주가 답했다. 좋고 나쁨은 인간의 판단일 뿐, 만물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우주의 입장에서 이로움도, 해로움도 없다고 깨우쳤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의 ‘문조물(問造物)’이다.

이어령 전 장관의 해석이 흥미롭다. “20세기 실존철학과 통하는 글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84)가 할 말을 800여 년 전에 했다”고 평했다. 그는 이규보의 ‘경설(鏡說)’도 인용했다. 흐리고 때가 묻은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는 거사(居士)가 있었다. 거울은 본디 깨끗해야 하지 않는가. 거사의 대답이 일품이다. 잘생긴 사람보다 못생긴 사람이 많기에 흐린 거울이 되레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고 했다. 빼어난 패러독스다.

이 전 장관은 우리 문학의 3대 천재로 이규보,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 황진이(생몰 미상), 시인 이상(1910~37)을 꼽았다.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황진이에게서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확인했고, 천재 시인 이상을 알고 나서야 기존 한국문학에 대한 실망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셋의 공통점으로 ‘등신대(等身大) 문학’을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줄이지도 키우지도 않은 바로 그 크기로 그려냈다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 ‘생사람 잡는다’고 하죠. 문학은 살아 있는 사람, 생사람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이데올로기가 돼요. 이념은 생사람을 잡지만 문학은 생사람을 살립니다.”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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