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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4만 척 지나는 무역로, 남중국해 잡아야 패권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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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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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미국·중국)의 남중국해 파워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27일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을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 중인 인공섬 12해리(약 22.2㎞) 안으로 보내면서다.

미·중, 군사 충돌 아닌 이익의 충돌
미국 “항행의 자유 … 작전 몇 달 계속”
라센함 외 구축함 추가 파견 계획
중국 “도발에 모든 조치” 경고하지만
무력으로 저지할 법적 근거 약해
당분간 충돌 대신 힘겨루기 할 듯

 이번 충돌로 남중국해를 세력권에 두려는 중국과 전 세계 제해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간 ‘핫 피스(Hot Peace)’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핫 피스’란 냉전(Cold War·1945~90)의 상대 개념이다. 냉전 때에는 전 세계 차원의 주도권 경합이 벌어졌지만, ‘핫 피스’는 지역적으론 직접 충돌하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이념 대결 대신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

 28일 중국 남해함대 미사일 부대가 미사일 공격 및 종합 방어훈련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국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당장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작전’은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계속될 것”이라고 못 박고 나섬으로써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은 이번 작전이 중국의 영유권을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항행(航行)의 자유’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어떤 국가의 도발에 대해서도 중국은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라센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군도의 수비환초(중국명 주비자오·渚碧礁)의 12해리 이내로 들어간 데 이어 베트남·필리핀·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암초의 12해리 안으로도 항해했다”고 밝혔다. “어떤 특정 국가(중국)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AFP통신도 “미군이 라센 외에 별도의 군함을 추가 파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충돌이 전면전으로 가거나 국지적으로 교전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해양전문기관 AMTI의 그레그 폴링 연구원은 “중국군 전력이 미국에 뒤지는 데다 중국 인공섬은 만조 때 물에 잠겨 국제법적으로 인공섬 12해리 이내를 항행하는 미 군함을 무력으로 저지할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작전을 결정한 건 중국의 인공섬 건설을 실제 저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남중국해, 나아가 아시아 전체를 둘러싼 패권 다툼의 성격이라는 지적도 많다.

 한 해 4만여 척의 선박이 통과하는 세계 둘째 무역항로이자 거대 오일루트인 남중국해를 누가 선점하느냐는 양국 패권경쟁의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내에선 “오바마가 움직이는 게 너무 늦었다”(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는 지적이 나온다. 존 햄리 CSIS 소장은 “미 대선전이 본격화할수록 (후보들 간에) 중국에 대한 강경론이 거세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축함을 파견해도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대응’을 요구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때 진짜 충돌 위기가 올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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