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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통계로 “고액 기부 늘었다”는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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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문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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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오늘 이 자리에서 합의하면 그냥 결정될 것 같은데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부금 활성화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 간담회’. 나경원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좋았다. 간담회는 새누리당 소속 나 위원장, 정갑윤 국회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 등 소득세법 개정안을 낸 세 사람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2013년 기재부는 연말정산 때 납세자의 ‘소득’에서 세금을 공제해 주던 방식(소득공제)을 세금에서 공제해 주는 방식(세액공제)으로 바꿨다. 이런 방식을 적용했더니 기부금에 대한 세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세 의원은 기부금에 대한 세금 혜택을 다시 높여 기부를 활성화하는 취지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희수 위원장과 조세소위원장인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 등도 이 자리에 있었다. 여야와 소득세법을 다루는 상임위의 주요 인사들이 의기투합했으니 일이 곧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문제였다. 참석자 중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만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2013년 세법 개정 후 통계를 뽑아봤더니 기부금에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인 기부자의 기부금 규모는 오히려 약간 늘었고, 법인 기부 금액도 늘었다. 1000만원이 넘는 고액 기부는 1200억원 늘었고, 1000만원 이하 기부만 감소했다”면서다. 문 실장은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경우 기부금에 대한 공제율이 6%→15%로 늘어 세금 혜택을 보는데도 기부가 줄었다”며 “소득세법 개정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계적으로 세법 개정이 기부금 증감에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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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간담회에서 김석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 등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체감한 ‘기부금 폭락 사태’를 증언했지만 그가 내민 통계는 달랐다.

 이때 “그건 2015년 연말정산 이전 자료지요”라는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의 지적이 나왔다. 세액공제 방식이 적용된 2015년 연말정산 이후 줄어든 기부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문 실장이 근거로 든 통계자료는 2013년과 2015년 연말정산 이전을 비교한 자료였다.

 19대 국회는 이제 66일 남았다. 2016년엔 새로 총선을 치른다. “20대 국회에서 다시 소득세법이 상정되리란 보장은 없다”(김관영 의원)는 지적처럼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데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런데 기재부는 낡은 통계를 내밀며 “고액 기부는 늘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

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