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정화원 의원 대정부 질문 후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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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인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점자를 읽으며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17일 오후 3시 충남 아산의 시각장애인협회 사무실. 앞을 못 보는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들어서자 10여 명 장애인이 "의원님의 대정부 질문을 정말 잘 들었다. 감사하다"며 반겼다. 4.30 재.보선 지원차 이곳을 찾은 정 의원은 이날 오전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장애인 마라톤 행사 연단에 올라 환영을 받았다.

지난 14일 시각장애인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 대정부 질문을 한 정 의원이 '인기 상한가'를 올리고 있다. 대학.단체들의 강연요청이 이어지고 TV 다큐멘터리 제작진도 그의 인생을 담기 위해 대기 중이다. 최근 사흘간 그의 사무실 등으로 걸려온 전화가 무려 1000여 통. 외국에서 온 것도 있다. 정 의원은 "독일에 산다는 40대 남자는 '인터넷으로 의원님을 봤다. 한국이 정말 달라졌음을 느꼈다'며 울먹이더라"고 전했다.

정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점자 읽는 속도가 느리고 땀이 나 힘들지만 더듬거려도 이해해 달라"고 말문을 연 뒤 열의에 찬 질의를 했다. 이해찬 총리가 첫 답변자로 나왔을 때 '느껴지지' 않자 "시각장애인에게는 기척을 내주는 게 국제 관례"라고 한마디 하기도 했다. 그 뒤론 "노동부 장관 연단까지 나왔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나왔습니다"라는 국무위원들의 '구두 보고'가 이어졌다.

"장애의 90% 이상이 후천성이다. 그래서 요즘은 (장애가 없는 사람을) 비장애인이라 안 하고 예비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를 교과서에 반영해 장애를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5년 4월 현재 15만2000개의 담배 소매 점포가 있다. 흡연인구 80명당 1개꼴"이라며 예리한 질의가 이어지자 장관들은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질의가 끝나자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았다.

정 의원의 '당당함'은 질의 원고를 모두 외우고 동선을 따라 예행연습을 하는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정 의원 스스로는 좌절하지 않는 낙천성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6.25 당시 세 살 때 포탄 화염에 눈을 다쳤다가 19세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그는 30여 년간 장애인운동을 하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왔다.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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