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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한 척 수출, 쏘나타 1만8000대 효과 … 안보도 창조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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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24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인터넷, 운전혁명을 가져온 네비게이션, ‘지구촌’이라는 단어의 등장 배경이 된 인공위성….’


인류의 삶을 바꾼 이들 제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군사 목적으로 발명됐다는 점이다. 국토방위용 제품과 시스템을 개발·생산하는 ‘방위산업’은 문명의 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접점은 없지만 기술적, 경제산업적으로 중요성을 더하는 방위산업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방위산업을 이해하려면 무기개발의 절차를 먼저 알아야 한다. 통상 무기체계 개발은 정부가 안보상 필요성을 감안해 ‘기획’하고 연구개발(R&D)까지 주도한다. “배에서 발사하고 몇㎞를 날아가 어떤 정도의 화력으로 폭발한다”는 무기체계 개발을 목표로 하면, 국방과학연구소가 장기간에 걸쳐 설계도를 만든다.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방산업체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한다. 국내 방산업체는 97개, 지난해 방산부문 매출은 10조5000억원 규모다. 연간 국방비가 35조~40조원 가량 되는데 이 가운데 10조5000억원 가량의 무기구매비용이 97개 방산업체의 매출이 된다. 지난해 국내 방산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3%(2435억원)로 보통 6~7%대를 오가는 일반 제조업에 비해 ‘그다지 많이 남지 않는 장사’를 했다.


방위산업은 일반 소비재 생산과 업의 성격이 판이하다. 방위사업법 제3조는 ‘방위산업은 정부가 지정한 방산물자를 포함한 무기체계 및 주요 비무기체계를 생산·제조·수리·가공·조립·시험·정비·재생·개량 또는 개조하거나 연구·개발하는 산업’으로 정의한다. 국가가 유일한 수요자이자 소비자이면서 시장을 제한하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군(軍)이 주 소비자이다 보니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고 나면 공장 가동률이 급속히 저하된다. 해외 수출길을 개척하지 못하면 다품종, 소량생산에 그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도 어렵다. 무기용 개발 기술을 상업용 제품에 적용하는 민수 사업 병행이 필수인 이유다.


무기체계 개발에 20년 걸려투자와 회수에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특이하다. 대개 하나의 무기체계를 개발하는데 약 20년이 걸린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안상남 대외협력팀장은 “올해 착수한 신무기 개발은 2035년쯤 전력으로 배치된다”며 “방산업체들은 양산에 들어간 이후 약 20년간 제품 생산과 유지·보수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고 설명했다.


방위산업은 전체 볼륨에 비하면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크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연구에 따르면 국방비를 1000원 지출할 때 1709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행정(1448원), 서비스업(1581원)보다 크게 높고 산업평균(1659원)도 웃돈다. 국방비 1000원 지출 때 창출되는 부가가치도 764원으로 제조업(627원)이나 산업평균(714원)보다 높다. 또 국방비 10억원 당 21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방과학연구소가 R&D 투자비 16조원을 투입할 때 거두는 경제효과는 187조원으로 투자효과가 11.64배에 달한다. 안 팀장은 “첨단화, 고도화, 기술 집약화 되면서 방위산업의 가치가 그만큼 커졌다”며 “방위산업은 안보와 경제 활성화의 선순환 고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직 방위산업에서는 선진국과 격차가 있다. 하지만 무기가 첨단화되면서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의 방위산업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방위산업의 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4000억 달러(500조원)에 달한다. 방위산업 기술력은 미국이 1위, 프랑스·독일·러시아·영국·일본이 그 뒤를 잇는다. 한국의 방위산업 기술력은 세계 9~10위 정도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방위산업의 제품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84~88%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신무기는 무인화·지능화·스마트화되면서 IT기술과 접점이 넓어지고 있어 한국 방위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LIG넥스원 김지찬 사업본부장은 “첨단 무기가 IT기기화된다는 점과 민족 분쟁,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방위산업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한국의 방산수출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2013년 국내 방위산업 수출 비중은 전체 생산액의 12.8%에 그쳤다. 반면에 선진국의 방산 수출 비중은 미국 15~23%, 영국 24~28%, 프랑스 23~35%, 독일 35~50% 등이다.


하지만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 성장속도는 빠르다. 방산 수출액은 2010년 11억8700만 달러에서 2014년 36억 달러로 3배 넘게 늘었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섬유제품 총수출규모(35억 달러)보다 많고, 우리나라의 대(對) 칠레?페루 수출액 전체를 웃돈다. 첨단무기체계 도입으로 무기의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1975년 F-5 전투기 한 대는 31억원이었으나 2005년 F-15K 전투기는 대당 1000억원에 달했다. LIG넥스원이 개발한 함대함유도미사일이나 대잠수함 어뢰의 경우 한 발 가격이 20여억원에 달한다. 잠수함 1척의 가격은 중형차 쏘나타 1만8000대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수출에 성공하면 방위산업은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효자가 될 수 있다.


내수는 B2G, 수출에선 G2G인 제품방산제품은 특성상 업체만의 힘으로는 수출길을 개척하기 어렵다. 방산제품은 내수시장에서는 B2G(기업·정부 간 거래) 상품이지만 국가 간 수출에서는 G2G(정부 간 거래) 상품이다. 구매 주체가 상대국 정부이다 보니 경제협력, 기술 이전, 동맹관계 강화 같은 정치·경제·외교적 요소가 수반돼야 수출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낼 수 있다. 동맹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수출입 의사를 묻기조차 어렵다. 예를 들어 중동 어느 국가에 공격용 미사일을 팔면 그 주변국이 외교와 통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방위비 인상이 부담스러운 동남아나 제3세계를 대상으로 기술이전 등을 앞세워 수출길을 넓히는 전략을 펼쳐야 방산 선진국들 사이에서 틈새시장 개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방산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방산비리’ 뉴스가 주목을 받을 때다. 방산비리는 국내 방위산업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하지만 국내 방위산업체들이 비리의 주범인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 린다김 사건, 율곡비리, 통영함 사건 등 대부분의 방산비리는 수십조원씩 들여 해외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다. 안상남 팀장은 “흔히 말하는 방산비리는 방위 ‘산업’이 아니라 방위 ‘사업’, 그 중에서도 무기도입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산업이 발전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책연구기관이 연구개발을 맡고, 민간 기업이 무기를 양산하는구조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연구 개발에 참여할 수 없다. 민간 기업은 정부에서 요구한 제품만 만들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은 전체 생산 무기의 80%를 수출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체제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해 수출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978년 9월 LIG넥스원의 전신인 금성정밀 구미공장을 찾아 사업현황을 듣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사명감으로 근무, 이직률 낮아업종이 특수하다 보니 방위산업 종사자들은 일반 소비재 기업 종사자들에 비해 사명감이 높다. LIG넥스원 구미공장에는 ‘회사에 갑니다, 애국하러’, ‘대한민국,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애국심과 사명감이 방위산업의 근간임이 문구에서 드러난다. 이직률도 낮다. LIG넥스원의 경우 이직률이 1.8%에 불과하다. LIG넥스원 김규진 CR기획실장은 “무기는 파트별로 나눠 개발한 부품 등을 결합해 만들기 때문에 개발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중요하다”며 “방산기업들이 종업원을 귀중히 여기는 경향이 다른 업종에 비해 강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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