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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태권브이의 핵심 기술 7개 … 차세대 에너지원 핵융합로가 태권브이의 심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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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전문가 한재권 교수.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인간의 크기를 뛰어넘는 거대한 로봇이 적과 싸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1970~80년대엔 거대 로봇을 다룬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사람처럼 움직이며 싸우는 로봇이 현실에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과거에는 꿈 같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일부 기술이 구현(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남) 가능한 상태입니다. 로봇 전문가인 한재권 한양대 융합시스템학과 교수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대 로봇 ‘태권브이’에 적용된 기술을 파헤쳐 봤습니다

거대 로봇 만화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습니다. 고층 건물만큼 큰 괴물이 도시에 쳐들어오면 비슷한 크기의 로봇이 출동해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막강한 힘을 갖고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 앞에서 기존의 탱크·전투기 등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 편 로봇의 활약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죠. 만화 속 태권브이는 조종사의 의지에 따라 현란한 태권도로 적을 물리칩니다. 실제 전쟁에서는 아직 그만한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이런 거대 로봇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태권브이를 현실로 끌어내면 어떤 모습일까요.

태권브이의 공식 기체명은 ‘TAEKWON -V’입니다. 56m의 키와 1400t의 몸무게를 갖고 있어요. 걸을 경우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는 정도인 약 30㎞의 속도를 내며, 전력을 다하면 경주용 자동차가 내는 속도인 300㎞ 정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갈 때는 전투기와 맞먹는 마하 1.2의 속도를 냅니다.

태권브이를 만든 ‘김 박사’는 인간의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파일럿인 ‘김훈’이 탑승용 비행기인 ‘제비호’에 올라탄 후 태권브이의 머리 부분으로 이동해서 조종하는 것이죠. 조종 방법은 간단합니다. 파일럿이 취하는 태권도 동작을 센서로 감지해 로봇이 따라 하는 거예요. 여기엔 7가지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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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로 조종하는 의수.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뇌파 센서가 탑재된 조종석

태권브이의 조종석은 머리 부분에 있습니다. 파일럿이 직접 로봇에 탑승하기 때문에 무선 조종 방식 로봇에 비해 신뢰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적이 전파방해 기술을 사용해 무선을 끊어 버리면 로봇이 움직일 수 없지만, 파일럿이 조종하는 방식이라면 이런 종류의 위험은 없겠죠. 평소에는 태권도 동작이 입력된 조종 버튼을 눌러 발차기·정권지르기 등을 하지만, 좀 더 빠른 속도로 전투해야 할 상황엔 파일럿이 직접 동작을 취합니다. 뇌파를 읽을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파일럿의 몸속에 삽입해 신경 신호를 로봇에 전송하는 것이죠. 이런 기술은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면 뇌의 대뇌피질이라는 부분이 반응하게 됩니다. 이 반응을 감지해 운동신호로 바꾸는 거죠. 뇌파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은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한재권 교수는 “주로 의학 분야에서 연구 중인 기술로, 뇌파를 감지해 의족·의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며 “꼭 뇌파를 읽지 않아도 동작을 인식해 기계를 움직이는 모션캡쳐 같은 기술도 있는데, 이미 비디오 게임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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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브이는 눈과 가슴에서 레이저의 일종인 광자력 빔을 쏘아 적을 물리칠 수 있다.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광자력 레이저 장치
태권브이의 가슴에 있는 ‘V’ 모양 구조물에서는 레이저의 일종인 붉은 광자력 빔을 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넓은 범위의 레이저를 적에게 쏘아 녹이거나 태워버리는 가공할 무기입니다. 눈에서 쏘는 레이저 장치도 있죠. 레이저는 100㎿의 위력을 자랑합니다. 1㎿가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형광등 약 5만 개를 켤 수 있는 전력량이라고 하니, 100㎿는 형광등 500만 개를 밝힐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인 셈이죠. 물론 현실에서 태권브이처럼 막강한 위력의 레이저를 넓은 범위로 아무 때나 발사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비슷한 방식으로 특정 물체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는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해군에서 개발에 성공한 ‘레이저 포’가 대표적입니다. 포탄 대신 레이저를 발사하는 개념의 무기죠.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기 위한 고출력 레이저 역시 개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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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레이저 포.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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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근육을 씌운 로봇(오른쪽)과 인간의 가상 팔씨름 대결을 상상한 모습.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인공근육

태권브이는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 붙이는 대신 섬세하고 빠른 발차기로 적을 제압합니다. 사람과 비슷하게 정교한 근육이 요구될 수밖에 없죠. 이를 위해서는 많은 분자가 수없이 연결된 ‘고분자물질’로 근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플라스틱이나 합성섬유·고무가 고분자물질로 이뤄진 재료입니다. 여기에 전기적인 자극이 가해지면 근육이 수축(부피나 규모가 줄어듦)되는 방식으로 태권브이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로봇의 전투에 활용될 정도로 고분자물질 기술이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술 자체는 있지만, 인간의 근육에 비해 속도·세기가 강하거나 빠르지 않기 때문이죠. 적이 주먹을 날리면 여기에 반응해 빨리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동작이 매우 느리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현재 다르파(미국방부고등연구계획국)에서는 군용 의상에 고분자물질을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옷이 사람 대신 유연하고 강하게 움직이는 원리”라며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의 아이언맨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태권브이에도 사용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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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섬유 소재가 적용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의 GE90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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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태권브이의 팔 부분 일러스트 이미지.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탄소나노튜브로 만들어진 몸체

태권브이는 공인 5단의 태권도 선수가 할 수 있는 동작을 취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발차기를 하거나 공중을 돌며 주먹을 내지를 수 있죠. 날렵하게 공격과 방어를 하려면 몸이 가볍고 단단해야 합니다. 태권브이의 피부가 탄소나노튜브로 만들어졌다고 설정된 이유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물질 중 가장 강력한 강도를 가진 탄소나노튜브의 강도는 철의 약 200배 이상에 달해요.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는 아직 개발 중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죠. 한 교수는 대신 탄소섬유(카본파이버)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탄소섬유는 금속보다 가벼우면서도 탄탄한 재료라 실제 F1(포뮬러1) 경주용 자동차에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것입니다. 우주왕복선이나 항공기에 겨우 사용될 정도죠.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태권브이의 몸값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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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적의 미사일을 빠른 속도로 맞출 수 있어 태권브이의 분리형 로켓 주먹 기술에 적용할 수 있다.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분리형 로켓 주먹

태권브이의 주된 공격 기술 중 하나는 주먹을 팔에서 분리해 적에게 쏘아 보내는 것입니다. 로켓 엔진의 가공할 속도로 적에게 주먹을 날린 후, 다시 팔로 돌아오는 기술이죠.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술입니다. 로켓 추진장치를 사용하면 마하 4~5에 달하는 빠른 속도로 주먹이 발사되는데, 이를 다시 팔로 회수(도로 거두어들임)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죠. 현실에서 로켓 주먹을 가능하게 할 비슷한 기술을 굳이 찾자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가 있습니다. 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중 방어 시스템이라, 빠른 속도로 물체를 맞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한 교수는 “로켓 주먹의 빠른 속도와 정교한 회수의 원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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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접착형 센서(왼쪽 사진). 국가핵융합연구소에 설치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의 외부 모습. 사진=브이센터 제공. 중앙포토]

정밀한 촉각 센서

적을 움켜쥐거나 바닥을 딛고 달리려면 접촉면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태권브이에는 촉각 센서 기술이 적용돼 주변 온도나 사물의 압력을 측정할 수 있죠. 아무렇지 않게 발차기를 하고 뛰어다니는 것 같지만, 촉각 센서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동작입니다.

센서 기술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움직임 감지 센서 덕분이고, 스마트폰을 만져 조작할 수 있는 것도 센서 기술이 적용됐기 때문이죠. 한 교수는 “압력센서가 여러 개 있으면 주변에서 감지한 신호가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치듯 연속으로 입력된다”고 말했습니다. 태권브이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장착된 센서의 양도 어마어마하겠죠.

주 동력은 핵융합로

석유나 석탄으로는 태권브이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몸무게가 1400t이기 때문에 석유로 움직인다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56m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는 힘은 몸 한가운데에 있는 핵융합로에서 나옵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 같은 곳이죠. 핵융합 기술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자핵들이 합쳐지며 더 무거운 원자핵으로 변할 때 생기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식이죠. 태양이 수십억 년 동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도 핵융합에 있습니다.

하지만 핵융합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장치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만들 수 있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기술 연구와 개발이 많이 남아있어요. 만일 핵융합을 이용한 동력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태권브이 같은 거대 로봇을 움직이는 것도 꿈은 아닙니다. 한 교수는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핵무기를 만드는 원리인 핵분열에 비해 핵융합은 훨씬 안전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 태권브이를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브이센터 제공·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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